"그런 건 만들어서 어디다 써먹나. 괜히 어린 아이들 꼬드겨서 돈이나 좀 벌어보겠다는 것 아냐?"
대략 난감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당혹스럽다. 그저 웃자고 한번 건네는 이야기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아무짝에도 쓸 모 없는 것 아니냐"란 말이 양념처럼 곁들여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얼굴까지 붉게 달아오르기도 한단다. '시간이 흘렀으니, 이젠 좀 바뀌었을 법도 한데.' 안타까움만 더해진다.
NHN 기능성 게임 연구소 연구원들이 흔히 겪는 일이다. '중독성과 사행성을 갖춘 게임은 좋을 게 없다'란 우리 사회의 과장된 인식 탓이라는 데….
NHN 기능성 게임 연구소의 김창우(36) 팀장과 권미진(35) 차장, 류재규(34) 과장 등을 만나 그들만의 게임 일기를 들어 봤다.
"주부의 성향을 먼저 파악하라."
기능성 게임은 일반 게임 고유의 재미 요소에 교육이나 지식, 건강, 등의 다양한 분야를 연계,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 시키려는 목적성 게임 콘텐츠다.
하지만 기능성 게임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김 팀장에게 이유를 묻자, 20여 년 전 아케이드 게임이 주류를 이뤘던 전자오락실에서의 추억을 먼저 떠올렸다.
"1980년대 전자오락실에서 10분만 있다가 오면, 큰일이라도 터지는 것처럼 집에서 난리가 났었던 기억이 있어요. 예나 지금이나 게임을 바라보는 이런 시각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듯 합니다. 요즘 젊은 주부들도 게임이 별로 좋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거든요."
아내를 대신해 동네 반상회에 꼬박꼬박 참석, 학부모들에게 '게임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얻어낸 김 팀장의 현장 시장 조사 결과는 그랬다.
기능성 게임이 주로 유ㆍ초년생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제품 구매 결정권을 갖고 있는 주부들의 성향과 트렌드 파악은 기능성 게임 연구소 연구원들에겐 반드시 거쳐야 할 사전 작업이다.
실제 현장에서 주부들의 구매 성향과 유사 제품에 대한 반응을 체크하는 것은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권 차장의 몫이다.
"(요즘 주부들은) 상당히 꼼꼼하고 냉정해요. 옛날처럼 아이들 제품이라고 해서 구매하고 싶은 제품에 대한 정보를 담당 직원에게만 의존하지 않거든요." 현장에 직접 나가 소비자들이 원하는 내용을 파악, 게임 기획팀에 전해야 한다.
게임 기획 초기 단계에서부터 소비자들의 입맛을 녹여내야 하기 때문이다. 권 차장이 매주 한 두 번씩 기능성 게임과 유사한 라이프 스타일을 지닌 문구 매장을 들러, 소비자들을 직접 관찰하는 이유다.
"고객과의 눈높이를 맞춰라."
기능성 게임을 주로 이용하는 어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게임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도 연구원들에겐 핵심 과제다. "가끔 조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면서 조카와 또래 아이들의 웃음 포인트를 유심히 살펴보게 되요. 어떤 장난감을 잘 갖고 노는지, 어떤 놀이들을 즐겨 하는지, 아니면 아이들이 어떤 행동들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직업병인지는 몰라도, 제 조카에 대한 주변 환경을 챙기는 것보단 제가 작업하게 될 게임 줄거리 찾기에 더 몰입하게 되더라고요.(웃음)" 게임제작 총괄을 맡은 류 과장이 전하는 노하우다.
하지만 기획을 마무리 했다고 해서 모두 순조롭게 제작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 제조업에서 기획 단계에 속하는 디자인 파트와 현업에 해당되는 제작 파트 사이에 의견 조율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어요.
신제품 출시 날짜는 정해져 있는데 서로의 입장 차이가 커서 애를 먹는 경우가 그런 때죠. 밤샘 토론을 통해 의견 절충을 이뤄내곤 합니다. 이미 출시된 '한자마루'(2009년4월)나 '생활의 게임'(2009년8월)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김 팀장은 인고(忍苦)의 시간을 떠올리기라도 하듯, 설명 과정에서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자마루'는 서비스 한 달 만에 30만 명의 가입자를, '생활의 게임'은 출시한 지 두 달 만에 200만 명의 월간 순 이용자수가를 기록할 만큼 상종가를 치고 있다.
이젠'게임을 소통의 장'으로 인정해야
그러나 기능성 게임 활성화의 최대 걸림돌은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게임에 대한 삐딱한 시선이라는 데에 이견은 없다.
게임을 청소년들의 놀이 문화로 인정하고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소통의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사행성과 중독성'이란 지엽적인 문제에 사로잡혀 탄력 받은 게임산업이 비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 다는 생각이다.
"10대 이하의 어린 청소년들의 80% 이상은 여가 생활로 게임을 가장 먼저 찾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게임이 곧 여가이고, 문화인 셈이죠. 게임은 무조건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규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거든요." 게임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드는 촉매제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는 게 권 차장의 지론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어 보인다. 기능성 게임을 이용한 네티즌들이 긍정적인 댓 글로 고마움을 전해올 때면 보람도 느껴진다.
"우울증 치료에 효과를 봤다거나 무료함을 달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메일이나 댓 글들을 받아 보면, 일종의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느껴요. 제가 뭔가 해냈다는 그런 기분 있잖아요.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파란불로 변하는 그 날까지 우리의 연구는 계속 될 겁니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사진=성남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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