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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청량산 - 안동 도산, 공민왕·퇴계·농암… 한국 정신문화의 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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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청량산 - 안동 도산, 공민왕·퇴계·농암… 한국 정신문화의 1번지

입력
2009.10.25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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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마을이 깃든 청량산은 낙동강 상류에 그려진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산이다. 퇴계 이황은 이 산의 12개 봉우리를 '육육봉(六六峰)'이라 했다. 높고 크지는 않아도 연이어 솟은 바위 봉우리와 기암절벽이 어울려 예부터 소금강으로 불릴 만큼 산세가 수려하다.

청량산 열두 봉우리 한가운데 고혹적인 사찰이 들어앉아 있다. 구름이 산문을 열고 닫는다는 청량사다. 마치 봉우리들이 꽃잎이 돼 청량사를 꽃술 삼아 한데 감싸 안고 있는 연꽃 형상이다. 사찰 중심 건물인 유리보전은 화려하지도, 그리 크지도 않지만 기품과 위엄이 있다. 유리보전 현판은 공민왕의 친필이고 법당에는 종이로 만든 지불인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청량사를 돌아 금탑봉 쪽으로 돌아 내려오는 길은 청량산 단풍 나들이의 하이라이트다. 봉우리들 사이로 청량사가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시선을 떨군 풍경 한 컷 한 컷이 그림이고 예술이다.

농암종택의 종손 이성원씨는 청량산 아래 경북 안동시의 도산 지역을 '한국 문화의 1번지'라고 자부한다. 청량산 육육봉의 그늘보다도 넓고 짙게 퇴계 이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땅이다.

중국 남송 때의 주희는 무이산에서 주자학(성리학)을 완성했다. 성리학을 이어받은 조선 시대 선비들은 주희가 머물렀던 무이정사에서 서원의 모범을 찾았고, 무이구곡가를 읊으며 주희를 흠모했다.

퇴계는 이곳 도산에 도산서원을 열고 후학들과 연구하면서 주희를 생활의 모범으로 삼았다. 퇴계는 청량산에 대한 글을 모은 <오가산지(吾家山誌)> 에서 청량산에서 낙동강을 따라가는 절경들을 일러 '도산구곡 원림'이라 노래를 불렀다.

1곡은 운암(雲巖)이요, 2곡은 월천(月川), 3곡 오담(鰲淡), 4곡 분천(汾川), 5곡 탁영(濯纓), 6곡 천사(川砂), 7곡 단사(丹砂), 8곡 고산(孤山), 9곡 청량(淸凉)이다.

농암 종손 이성원씨는 "하지만 안동댐 때문에 도산 9곡 가운데 6곡이 물에 잠겼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지금 안동댐을 건설하려면 동강댐 100배 이상 저항을 받았을 것"이라며 "안동댐 수위를 몇 미터만 낮췄더라면 도산은 고스란히 보존됐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안동 시내에서 도산서원을 가기 전 먼저 들릴 곳은 월천서당이다. 동부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들어가는 구불구불 길의 끝에 마을이 하나 걸려 있다. 마을의 안동호가 넓게 보이는 언덕에 고즈넉한 서당 하나가 서있다. 퇴계의 제자인 월천이 후학을 기르기 위해 세운 월천서당이다.

서당 앞에는 300년은 족히 넘었을 은행나무가 서 있다.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서당 문 너머로 보이는 안동호가 한없이 고요하게 다가온다.

도산서원은 퇴계종택과 함께 도산에 짙게 드리운 퇴계 문화의 상징이다. 서원 문턱을 넘으면 농운정사 하고직사 도산서당 동재 서재를 거쳐 전교당에 이른다. 전교당에 걸린 '도산서원'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다.

도산서원에서 나와 구불구불 고갯길을 넘어가면 퇴계의 종택과 묘소가 있는 토계리다. 이 길을 좀 더 달리면 원천리, 퇴계의 14대손이자 저항 시인인 이육사가 태어난 곳이다.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먼 데 하늘 꿈꾸며/알알이 들어와 박혀' 청포도가 익는다는 그의 고향이다.

마을 한쪽에 이육사문학관이 조성됐다. 도산의 왕모산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난 때 자신의 어머니를 피신시켰던 곳이다. 이곳에는 공민왕의 어머니를 신으로 모신 왕모당이 있어 매년 정월 보름이면 주민들이 당제를 지낸다고 한다.

왕모산성의 안내판에는 산성의 전체 길이가 360m를 넘었는데 현재는 50m만 남았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나무가 우거져 산성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왕모산성을 찾아가길 권하는 이유는 산성 오르는 길에 내려다 보이는 풍광 때문이다. 금빛 들판을 유유히 휘돌아 나가는 낙동강의 물돌이가 장관이다.

가송리에 있는 농암종택은 원래 도산서원 1km 아래인 분천리에 있었다.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종택의 유적 유물 등은 안동 시내 등에 흩어졌었다. 1996년 이성원씨가 이곳 도산면 가송리 올미재마을에 새로운 터를 잡아 종택과 서원 등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농암종택을 감싼 주변 풍경은 과연 '어부사'를 쓰며 강호지락을 추구했던 농암 이현보의 터전답다. 낙동강 물줄기와 청량산에서 흘러온 산자락이 서로를 굽이치며 희롱하는 절경 한가운데에 종택이 자리하고 있다. 종택 앞으로 휘돌아 흐르는 낙동강은 강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백사장이 있고, 소가 있고, 물 안에는 눈부신 바위들이 솟구쳐 있다.

■ 여행수첩

청량산 산행의 출발점은 청량폭포와 선학정, 입석 등 3곳. 이중 청량사를 지나기 위해서는 선학정이나 입석으로 올라가야 한다. 두들마을로 향할 때는 청량폭포에서 오른다.

청량산 입구에 여러 모텔과 펜션, 식당들이 들어선 관광단지가 조성돼 있다. 농암종택에선 하룻밤 종택 체험이 가능하다. 단풍철 주말 예약은 이미 끝난 상태다. www.nongam.com (054)843_1202

청량산 인근 명호면 북곡리에 있는 청산농원은 토종닭과 함께 흑염소 요리를 잘한다. 흑염소불고기 1인분에 1만원. (054)672_1463

안동ㆍ봉화= 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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