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동춘서커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동춘서커스

입력
2009.10.25 23:46
0 0

김해 외가는 늘 추억거리를 안겨주는 곳이었다. 방학 때면 사촌들과 낮에는 개천과 논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개구리를 쫓아다니며 놀았다. 밤에는 참외, 수박 서리로 날 새는 줄 몰랐다. 어느 날 동네에 서커스단이 왔다. 읍내 입구 공터에 큰 천막이 세워지고 만국기가 펄럭였다. 우스꽝스런 복장의 광대는 둥둥 큰북을 치며 손님을 끌어 모았다. 어른들을 졸라 보게 된 서커스는 경이로웠다. 줄타기, 접시 돌리기, 외발자전거 타기, 불쇼 묘기에 모두 손바닥이 발개지도록 박수를 쳤다. 막간마다 "애들은 가라"고 악을 쓰던 약장수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나라 서커스단은 조선 후기에 춤 노래 곡예를 생활수단으로 삼아 떠돌이 생활을 한 유랑예인집단이 뿌리다. 남사당패, 광대패, 초라니패, 걸립패, 각설이패 등으로 불린 이들은 조직 결집력과 전문성을 갖추고 전국의 서민 대중과 삶의 애환을 함께 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 전기 때부터 등장하는 사당패지만, 내용 면에서 서커스단과 가장 유사했던 집단은 경남 진주를 본거지로 한 솟대쟁이패다. 이들은 살판(땅재주) 새미놀이(줄타기) 병신굿(탈놀음) 버나(대접 돌리기) 풍물(농악) 솟대 타기 곡예를 주로 펼쳐 보였다(주강현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

▦1970년대까지 인기를 끌던 국내 서커스는 TV 보급 확대와 함께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대중이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들이 늘어나면서 서커스는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해외의 유명 '천막 서커스단'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러나 우리 서커스가 쇠락하는 사이 그들은 '아트서커스'라는 새 장르를 개척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저 난이도 높은 묘기만 보여주던 데서 탈피해 전통적인 곡예에다 음악과 영상, 스토리를 접목해 서커스를 뮤지컬처럼 종합 공연예술로 탈바꿈시켰다. 2007년과 지난해 내한 공연을 한 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가 대표적이다.

▦국내 최초 서커스단인 동춘서커스가 내달 해체된다. 비보이 합동 공연, 뮤지컬과의 혼합 장르 개발 등으로 생존해 보려 했지만 허사였다고 한다. 단원 50여명 중 한국인 곡예사가 5명 뿐이라니, 유랑 예인의 맥이 끊길까 염려스럽다. 600석 규모의 뮤지컬 전용극장을 갖춘 855억원 짜리 주민센터를 짓는 판에, 사당패 후예들의 열망인 작은 상설무대 하나 만들어주지 못한 정부의 무관심과 인색함이 야속하다. 외국 서커스처럼 우리 전통 곡예도 대중을 흡인할 수 있는 콘텐트와 결합하면 얼마든지 블루 오션이 될 수 있다. 관건은 정부의 지원과 대중의 애정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