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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전산망 해킹… 친구·후배 성적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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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전산망 해킹… 친구·후배 성적 조작

입력
2009.10.25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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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해킹 기술에 관심이 많던 서울의 한 사립대 정치외교학과 졸업생 이모(27)씨는 지난 2월 자주 찾던 인터넷 카페에서 '버프슈트(Burp Suite)' 프로그램을 무료로 구했다.

버프슈트는 전산망 내 패킷(정보조각)의 유통량 등을 점검하는 관리자용 프로그램이지만, 보안 상태가 나쁠 경우 패킷이 담고 있는 내용도 알 수 있어 단순한 수준의 해킹에 악용되기도 한다.

이씨는 호기심에 이 학교 학생들이 수강신청, 학점 확인 등을 위해 자주 드나드는 학내 사이트에 접속한 뒤 버프슈트를 가동했다. 놀랍게도 전산망 관리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흘러나왔다. 지극히 초보적인 해킹에도 뚫릴 만큼 대학 전산망의 보안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전산망 관리자에겐 학점 내역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이씨는 졸업을 앞둔 친구, 후배들의 부탁을 받고 이들의 성적을 손봤다. 공무원 시험 준비로 학과 공부에 소홀했던 임모(29)씨를 위해 듣지도 않은 과목에서 A학점을 받은 것처럼 꾸몄다. 또 후배 황모(22)씨가 이수한 과목 중 9개의 학점을 올려 평점 3.60이던 성적을 4.01로 높였다.

이 덕에 황씨는 성적순으로 뽑는 학과 조교에 채용돼 한 학기 동안 활동하기도 했다. 이씨는 학과를 옮긴 후배 노모(22)씨가 전공과목에서 C학점을 받자 성적을 삭제해주기도 했다.

이씨는 이런 식으로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18차례에 걸쳐 학내 전산망에 침입, 이 대학 4학년생 4명의 학점을 조작했다. F학점을 A학점으로 바꾼 것이 6번이고, 이수하지 않은 과목에 A학점을 매긴 것이 10번, C학점 이하를 받은 과목을 이수 과목에서 뺀 것이 2번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 등은 '시험 커닝하는 정도로 생각했다'고 진술하는 등 별다른 죄의식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6개월에 걸쳐 수시로 성적이 조작됐지만 대학 측은 전혀 사실을 알지 못했다.

범행이 들통난 것은 이씨의 뒤늦은 각성 때문이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가 지난 8월 황씨의 성적을 원래대로 고쳤고, 평점 4.0이 넘는 학점을 받았다는 딸의 말만 믿고 있다가 성적을 확인한 황씨 부모가 학교 측에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그간의 조작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이씨와 성적 조작 의뢰자 4명을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학 성적 조작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학교 전산망을 해킹해서 성적을 고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다른 대학에도 비슷한 수법의 성적 조작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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