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경남 김해시 본산공단의 플라스틱 금형을 만드는 중소기업 코니토. 귀를 따갑게 하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기계들 사이를 10여 명의 직원들이 쉴새 없이 오가며 상태를 살피고 있다.
하지만 이들 직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공장 안 어디를 둘러봐도 20대는 찾기가 쉽지 않다. 대다수가 외국인 노동자이거나 30대 후반을 훌쩍 넘긴 직원들이다. 안동휘(47) 사장은 "현장 직원 중 20대 직원은 1명 밖에 없다"며 "그 직원도 전에 있던 회사가 문을 닫은 후 옮겨왔다"라고 설명했다.
안 사장은 국내 대기업 직원이던 1983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마다 일본 등 해외 수출로 300만 달러 이상을 버는 견실한 기업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안 사장은 정작"현장에서 일할 사람이 없어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날이 오는 것이 아닐까"하는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
젊은 기능 인력 찾기는 "하늘에서 별을 따는 마음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는 게 안 사장의 설명. 인터넷이나 언론에 구인 광고를 내고 인력 채용 정보회사에 의뢰를 하고 심지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쓸만한 기능 인재를 추천해달라며 사람 찾기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허탕치기 일쑤라고 했다.
회사를 찾은 입사 지원자들도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퇴근 시간, 휴일, 보너스 등에 더 관심이 많다. 그는 "공장에서 기계를 만져야 한다는 얘기를 꺼내면 낯빛이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자신의 토익, 토플 점수가 몇 점이라며 관리, 사무직 근무 아니면 일하기 힘들다고 당당히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전했다.
이 회사의 유일한 20대 직원 김국희(27)씨는 "모든 제조업의 기본이 금형이지만 정작 학창시절금형을 전공하려는 학생은 별로 없다"라며 "공업계 고등학교 학생 대부분이 컴퓨터 프로그램, 소프트웨어 등으로 쏠린데다 졸업을 해도 취업보다는 대학을 택한다"고 말했다.
안 사장은 "학교에서 일을 배웠다고 해도 결국 현장에서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고 1,2년 힘들여 가르쳐 놓아도 조금이라도 대우가 좋은 곳이 나타나면 미련없이 다른 회사로 휙 가버린다"라며 "배신감 때문에 밤잠 설치는 것도 이제 옛날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철새 기능 인력'에 대한 우려는 안 사장뿐만이 아니었다.
수도권에서 휴대폰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사장 이모(53)씨는 7월 말 회사 문을 닫았다. 그는 "14명이었던 현장 기능 인력 중 절반이 연봉 몇 백 만원 더 달라는 요구에 형편이 어렵다고 난색을 보이자 한꺼번에 회사를 옮겨버렸다"라며 "나머지 직원들도 비슷한 업종의 다른 공장으로 가도록 했다"고 말했다.
산업현장을 그나마 묵묵히 지키고 있는 층은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안사장은 "한국 직원들보다 기술을 익히는 속도는 좀 느리지만 한 번 회사에 들어오면 1,2년은 꾸준히 일하기 때문에 차라리 낫다"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 마저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 정부가 실업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외국인 노동자의 취업을 제한하는 '외국인 노동자 쿼터제'가 또 다른 암초가 될까 걱정이기 때문이다.
안 사장은 숙련 기능 인력의 부족현상은 나라 전체 경제로 봐서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는 기술을 가진 젊은 기능 인력들이 현장보다 대학 진학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렵사리 대학을 마친 이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정작 많지 않다"며 "반면 현장에서 필요한 젊은 숙련공은 제 때에 찾지 못하는 불균형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염려했다.
이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해마다 다면적 평가지표를 바탕으로 각 나라의 세계 경쟁력을 측정하는 '기업 내에서 종업원 훈련 교육의 높은 우선 순위'를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숙련 및 현장 혁신 역량과 관련 있는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5.38점(10점 만점, 2006년 기준)을 얻어 61개 나라 중 43위에 그쳤다. 또 '숙련노동력의 즉시 활용성'에서는 5.12점으로 전체 47위에 머물렀고 '능력을 갖춘 엔지니어의 자국 내 노동시장 활용성'에서는 4.73점으로 54위였다.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숙련 인력에 관한 지표들의 국제 순위는 우리의 경제력 규모나 수준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하위권"이라며 "더 큰 문제는 그 순위가 계속 떨어지고 있고, 이는 국가 산업의 혁신 역량이 나빠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문제의 원인에 대해 장 연구위원은 '악순환의 반복'을 지목했다.
그는 "기능직에 대한 사회 경제적 말捉?부족하고, 그 중요성을 충분히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뿌리 깊이 박혀 있다"라며 "현장에서 손을 가지고 기술을 연마하는 일을 하찮은 일로 여기고 굳이 이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안 사장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능 인력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정부의 정책 변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안 사장은 "우리 때는 정부의 중공업 우선 정책에다 대기업들이 기능 인력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을 만큼 기능 인력을 우대했다"라면서 "하지만 90년대 이후 대부분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최소화하고 사내 하청, 단기 계약직, 비정규직 채용을 늘리는 고용 유연화 전략을 구사 하면서 기능 인력이 설 자리 자체가 위협 받고 있다"고 걱정했다.
안 사장은 "자동차, 조선 등 핵심 산업의 기능 인력은 고령화 현상이 심각해 지고 있고 다음 세대로 숙달된 솜씨가 전수되지 못하고 있다"라며 "정부의 파격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머지 않아 국가 산업 전체의 위기가 올 지 모른다"고 말했다.
■ "쓸만한 사람 어디 없나요"/ 숙련공 부족 심각…기업 83% "경영 애로"
무늬만 기능 인력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들은 취업난으로 인한 고민에 빠져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기능 인력을 찾기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지난해 전국 1만 개 중소기업(제조업 및 지식기반서비스업 포함)의 인력 실태를 점검한 결과 제조업 관련 중소기업에서 인력 부족률이 가장 높은 분야는 전문가(4.33%)와 기능직(3.69%) 그리고 기술직 및 준 전문가(2.89%)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판매관리직(2.18%), 서비스종사자(1.72%), 사무관리직(0.72%)은 인력 수급 상황이 상대적으로 나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식기반서비스업도 기능직(8.42%), 전문가(4.40%), 기술직 및 준 전문가(3.57%) 순으로 인력이 모자랐다.
또 기술 개발을 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에서도 기술개발을 위한 기능 인력 확보 곤란(23.5%)을 1순위로 꼽았다. 기술개발 자금 부족(20.8%), 연구설비ㆍ기자재 부족(16.1%)보다도 사람 부족이 급한 불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인력을 찾는데 애를 먹는 이유에 대해 기업들은 '적합한 인력이 없어서'(46.0%)가 가장 높았고 '임금 조건이 맞지 않아서'(37.0%), '작업 환경이 열악해서'(34.1%) 등 순으로 답했다.
특히 기술ㆍ능력을 갖춘 숙련 기능 인력의 상황은 심각하다. 노동부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근로자 10인 이상의 기업체 중 46.2%가 숙련이 충분히 되지 않은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숙련 부족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비율이 높아 10~29인 규모는 39.4%이나 1,000인 이상은 79.2%였다.
숙련 기능 인력 부족은 회사 경영에도 지장을 주고 있다. 특히 300인 이상 규모 기업의 82.5%가 회사 경영이 애로를 겪고 있다고 했다.
기술개발 전문 인력의 고령화도 또 다른 걱정거리이다. 기술개발 전문 인력을 연령대 별로 봤더니 30대가 절반 이상(52.8%)을 차지하고 있었고 40대 이상이 24.1%나 됐다. 반면 20대는 23.1%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젊고 유능한 기능인들이 중소기업을 외면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라며 "기술 개발이 없이는 무한 경쟁을 견딜 수 없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해=박상준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