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자민당 전 정권 하에서 굳건하게 유지돼온 미국과 일본의 동맹관계에 심각한 균열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새 민주당 정부를 겨냥한 미 국무부 관리의 거친 대일 비판발언이 잇따르는 등 지난 20~21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방일을 계기로 미일갈등이 전면 표출되는 분위기다. 미측의 이 같은 격앙된 태도는 미국과의 대등외교를 표방한 일 하토야마 정부의 외교행보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22일 워싱턴포스트지에 따르면 게이츠 국방장관의 방일 후 미 국무부의 한 고위관리는"아시아 외교파트너로서 일본은 그간 편안했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며 "지금 가장 어려운 문제는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전제한이 관리는 나아가 "일본의 새로운 집권당은 정부를 운영하는 경험이 부족하며 전통적으로 관료에게 나라를 맡기던 방식에서 벗어나 정치인들이 책임을 지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듣기에 따라선 외교분쟁을 초래할 수준의 발언이다.
외교 관례를 벗어나기는 방일 당시의 게이츠 장관도 마찬가지였다. 게이츠 장관은 21일 기타자와 도시미(北澤俊美) 방위성 장관의 만찬초청과 자위대 사열을 거절했다. 게이츠 장관은 그러면서 기타자와 장관과의 회담에선 "일본이 미군 재배치 로드맵을 지키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게이츠 장관은 앞서 20일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무장관과 회담에서도 후텐마(普天間) 미군비행장 이전과 관련, 1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방문 때까지 결론내 주길 바란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오카다 장관은 22일 "선거로 표출된 민의가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미일 합의니까 실행하겠다'고 결론 지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오카다 장관은 "(게이츠 장관과 회담에서)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하겠다고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미국의 요구에 그대로 따를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일 민주당 정부의 외교정책과 관련, 미일 갈등이 이처럼 심각하게 표출된 전례는 찾아볼 수 없다. 앞서 지난 9월엔 제프 모렐 미 국방부 대변인과 후지사키 이치로 (藤崎一郞) 주미 일본대사가 자위대의 인도양 급유지원 중단문제로 공개적인 말싸움을 벌였다. 미일은 일 민주당 정부 출범후 미군 재배치 재검토, 동아시아공동체 구상 등에서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다.
켄트 칼더 미 존스홉킨스대 동아시아연구소 소장은 "지난 30년 동안 미일 갈등이 지금처럼 표출된 적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도쿄=김범수특파원 bskim@hk.co.kr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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