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서울 월드컵공원 폐쇄회로(CC)TV에는 멧돼지가 잡혔다.
놈이 휘젓고 다닌 곳은 고양시와 인접한 노을공원 북서쪽 경사면으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장소였다. 노을공원에서 멧돼지와 그 흔적이 발견된 것은 2003년 6월과 2004년 7월 두 차례다.
월드컵공원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으로 향했다. 칡덩굴과 가죽나무, 아까시나무 등이 우거져 있고, 2002년 공원으로 변신하기 전부터 자생해 온 수령 30년 정도의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북한산에서 번식한 멧돼지가 인근 대덕산과 경작지를 넘어 먹이를 찾아 넘어왔을 겁니다. 개체의 서직지가 겹치지 않도록 이동한 결과라고 보입니다."
동행한 서울시 서부푸른도시사업소 직원의 말이다. 그는 곧이어 땅바닥을 손으로 가리켰다.
"겉으로 보기엔 다른 곳이랑 똑같죠. 그런데 지하로 1m만 파고들어가면 쓰레기 더미가 보일 겁니다." 노을공원은 과거 난지도매립지 위에 1~1.5m 높이로 흙을 덮는 복토공사를 통해 탄생했다. 높이가 94m에 달한다. 이웃한 하늘공원도 98m 높이의 쓰레기더미 위에 흙을 덮고 억새 등을 이식해 외모를 바꿨다. 당시에 92종 73만3,000여 그루(교목 53종 1만8,000 그루, 관목 39종 71만5,000 그루)의 나무가 심어졌다.
지난해까지 골프장으로 활용되다 공원으로 개방된 노을공원 정상은 온통 잔디밭이다. 골프장 '러프'로 조성된 곳은 지금은 숲이 무성해 야생동물의 이동통로와 서식장소가 됐다. 억새와 버드나무가 자생하고 콘크리트길 곳곳에 너구리 배설물들이 널려 있다.
쓰레기 속 매립가스와 침출수가 빠져나가면서 공원 곳곳 지반이 조금씩 가라앉고 금이 간 흔적이 있다. 많게는 4~5m가 꺼진 곳도 있다. 하지만 공원 내에 쓸모 없는 땅은 없다. 침하된 곳은 물이 고이면서 자연습지가 생겼다.
지름 20m 정도의 웅덩이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갈대 부들 통발 등 습지식물이 자라기 시작했다. 맹꽁이와 참개구리의 서식지로 변했고 고라니와 너구리도 목을 축이러 들른다.
2002년 월드컵공원이 조성된 후 생명체들이 하나 둘씩 찾아오고 있지만 이 곳 환경은 아직은 척박한 편이다. 쓰레기 산을 부직포로 덮고 그 위에 토사를 쌓다 보니 토사 두께가 1m 안팎으로 매우 얇다.
식물이 뿌리를 깊이 뻗을 수 없는데다 지하수도 없기 때문에 큰 나무는 애초에 자랄 수가 없다. 때문에 시는 하늘공원에 억새를 대량으로 심었다. 노을공원에 있는 버드나무도 키가 1~2m 정도로 매우 작은 편이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도 생명체들은 공원 전체에 퍼져가고 있다. 사람 발길이 뜸한 경사면을 중심으로 아까시나무, 버드나무, 가죽나무, 덩굴식물 등이 자생하기 시작했다. 삵과 고라니 등 전에 볼 수 없던 포유류까지 포착됐다. 이에 따라 공원 내 경사면은 2004년 야생동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억새가 무성한 하늘공원은 서울시민들의 산책코스로 자리잡았다. 막바지 가을을 즐기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억새 사이에 드문드문 고개를 내민 붉나무는 가을정취를 더해준다. 하지만 생명체들은 월동준비에 들어가며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인공습지 주변에는 송장헤엄치기와 방아깨비, 노린재 등이 보이지만 찾기가 쉽지 않다. 알을 낳고 습지 위에서 생을 마친 잠자리 성체의 모습은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고 있다. 습지옆에 자생하는 돌콩이 '탁 탁 탁' 요란한 소리를 내며 꼬투리를 터뜨리고 있다.
새들이 활동하는 주무대는 난지천공원 오리연못과 평화의공원 난지연못이다. 쓰레기 매립으로 하천 기능을 상실한 난지천에 다시 길을 낸 후 한강물을 끌어들인 후에는 새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오리연못에는 오리를 비롯해 딱새와 물총새가 자주 찾고 애기부들 등 수생식물을 심어놓은 난지연못은 왜가리와 중대백로 먹이사냥터로 변했다.
대규모 환경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한 월드컵공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시는 공원 북쪽에 첨단미디어단지인 DMC(Digital Media City)를 조성하는 한편, 이 일대를 관광명소로 바꾸기 위한 장기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내년 말에는 노을공원 경사면을 따라 투명 유리통로(130m)를 만들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쓰레기산 형성과정을 살필 수 있게 할 예정이다.
한때 먼지와 악취의 대명사였던 서울의 거대한 쓰레기장이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스토리텔링을 간직한 서울의 환경생태 랜드마크로 등장할 날이 멀지 않은 듯 하다.
■ 매립가스는 보일러 연료 재탄생
월드컵공원 조성과정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는 쓰레기가 각종 쓰레기가 부패하면서 발생하는 매립가스와 부패성 유기물인 침출수로 인한 환경오염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일단 침출수가 새지 않도록 두 개의 쓰레기 산이었던 노을공원과 하늘공원 주변 지하에 깊이 17~56m, 총 길이 6,017m의 차수벽이 설치됐다. 차수벽 안쪽으로는 200m 간격을 두고 31개의 집수정을 설치해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침출수를 모으는 역할을 했다. 침출수는 전문처리장에서 1차 정화된 후 하루 1,860㎥씩 난지 하수처리장을 거쳐 한강으로 방류되고 있다.
악취와 인화성이 강한 메탄은 연료로 쓰이고 있다.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곳곳에는 가스를 모아서 뽑아낼 수 있는 포집공이 있다. 실제 공원 경사면에는 120m 간격으로 106개의 포집공이 40~60m 깊이에 박혀 있다.
이러한 포집공을 연결해주는 이송관로는 14.1㎞에 달한다. 이송관로를 따라 가스는 두 공원 사이에 있는 매립가스처리시설인 지역난방공사로 이동해서 월드컵경기장과 성산동 일대 아파트 4,430여 세대의 보일러 연료로 바뀐다. 향후 20년간 현재와 비슷한 양의 가스가 생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 난초·지초 만발했던 꽃섬 난지도 쓰레기매립지로 변모 '아픈 역사'
난지도(蘭芝島)가 쓰레기로 뒤덮이기 전에는 난초와 지초가 철 따라 만발해 '꽃섬'이라 불렸으며 갈대 숲이 무성한 철새들의 낙원이었다. 망원정 부근에서 한강과 갈라진 샛강이 행주산성 쪽에서 다시 한강과 합쳐져 섬을 형성했다.
1978년 쓰레기장이 되기 전에는 연인들의 데이트코스이자 영화촬영의 명소로 각광받을 만큼 아름다웠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난지도를 사람살기 좋은 곳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이 섬은 고도성장의 배설물인 쓰레기 매립지로 변하면서 뼈아픈 역사적 공간이 됐다. 1978년부터 15년 동안 생활쓰레기 건설폐자재 산업폐기물 등 오염물질 9,200만톤이 그대로 쌓였다. 8.5톤 트럭으로 1,300만대의 분량이다.
서울시는 한때 이 지역을 개발하면서 쓰레기를 수도권 매립지로 옮길 계획을 세운 적이 있으나 워낙 거대한 작업이라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사진=김주성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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