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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 종교와 과학, 모두 광기를 버리고 참된 친구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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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 종교와 과학, 모두 광기를 버리고 참된 친구가 돼라

입력
2009.10.2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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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지음/동연 발행ㆍ255쪽ㆍ1만3,000원

개인이 지닌 신앙의 깊이나 성숙도의 편차만큼 종교 비판 혹은 부정의 경로는 다양하다. 종교의 가치와 효용성, 신의 기원과 실재 등을 둘러싼 논쟁의 역사 역시 종교의 연륜만큼 유구하다. 오래 전 한 인간이 알타미라 동굴의 벽 앞에 서서 조야한 돌칼로 짐승 문양을 새길 때, 누군가는 곁에서 그를 조롱했을지 모른다.

그래도 어쨌든 종교는 번성했고, 곧 신의 자리를 대신할 것도 같은 현대 과학의 위세 앞에서도 오연히 맞서고 있다.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의 생각처럼 인간이란 '호모 렐리기오수스(Homo Religiosus)' 즉 성스러움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로 진화해온 것일까.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수년 전 저서 <만들어진 신> 에서 종교를 "무익할 뿐만 아니라 아주 유해한 망상으로서 하루 속히 폐기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설파했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투명한 이성과, '종교라는 망상'으로 자행돼온 인류 범죄의 역사를 대차대조표 짜듯 대비하며, 종교-과학의 그 유구한 투쟁사에서 뚜렷한 전과를 올린 과학 전사들의 업적과 이성적 정당성을 부각시켰다. <만들어진 신> 은는 종교를 께름하게 여기는 이들의 뜨거운 환대를 받고 있다.

이 책 <종의 기원 vs 신의> 은 진보 신학자인 김기석(49) 성공회대 교수가 도킨스에게 던지는 겸손하지만 강력한 반론이자, 그가 생각하는 종교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응답이다. 생의 전반기 동안 도킨스 못지않은 공격적 무신론자였고, 신학자가 된 지금도 진화론에 유보 없이 동의하며, 도킨스의 현상 종교 행태에 대한 비판에도 앞장서 동조하는 저자는 "(그렇지만 도킨스의) 종교의 본질에 대한 비판은 수긍하지 않는다"고 맞선다. 그러면서 <만들어진 신> 의 종교비판 논지들을 따라가며, 도킨스의 대중적 논조 못지않은 대중적인 화법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첫 장 제목은 '예수는 존 레넌을 좋아할까?'다. 도킨스는 "존 레넌의 노랫말처럼 '상상해보라, 종교 없는 세상을!' 9·11도, 런던 폭탄테러도, 십자군도, 마녀사냥도 (…) 없다고 상상해 보라"고 썼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수백만,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공공연한 무신론자' 히틀러와 스탈린의 예는 왜 언급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또 도킨스가 예 든 온갖 종교 악행의 뿌리가 과연 망령된 종교 교의인지 권력의 '땅 따먹기' 욕망 때문인지 따진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이슬람 원리주의의 광기를 비판하기 전에, 제국주의 조국 영국의 혜택을 음으로 양으로 입은 제1세계 학자로서 도킨스가 자신의 공동체(국가, 지식인사회)가 감당해야 할 응당한 책임은 왜 묻지 않는지 따진다. 그러면서 간디가 "이 구절대로라면 나도 힌도교도이며 동시에 기독교도가 기꺼이 되겠노라"고 말했다는 저 유명한 마태복음 5장의 구절을 인용한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현실(상) 종교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도킨스 못지않게 매섭다. 천당과 축복을 팔아 성금함을 채우려는 성직자의 거짓 교설, 목회자에게 유형무형의 압박을 자행하는 힘있는 평신도들의 행태, 성서 구절을 문자주의적으로 신봉하며 종교적 도그마를 웅변하는 광신집단의 오만을 그는 가차없이 비판한다. 그러면서 존 레넌이 '종교 없는 세상'을 꿈 꿀 때 역설적으로 갈망했을 참 종교가 그 비판의 너머에 있다고 말한다. 그의 현상 종교 비판은 도킨스의 본질 종교 비판에 대한 비판과 삐걱임 없이 맞물린다.

저자의 하느님은 "세상을 초월한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구체적 역사 속에서 삶의 환호와 신음에 응답하는 살아 있는 존재"다. 그에게는 구약성서 역시 '야만적인 청동기시대의 문헌'도, 만고 불변의 도그마도 아닌, 시대의 컨텍스트에 따라 끊임없이 달리 읽고 해석해야 하는 생명체다.

종교와 과학의 불화라는 관습적 이해도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 뒤 저자는 인간 정신의 가장 빛나는 두 성취인 종교와 과학이 인류 자유 확대의 노정에 협력해야 할 동반자라고 주장한다. 그런 뒤 그는 세계 과학자의 절반 이상이 전쟁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을 슬쩍 언급하며 "종교를 없애야 좋은 세상이 오는 것이 아니라 참된 종교를 세워야 하고, 참된 과학을 세워야 한다"고 간곡히 호소한다.

생물학자 도킨스의 신학적 식견 못지않은, 과학적 내공을 엿보게 하는 이 신학자의 품위 있는 저서가 하루빨리 번역돼 도킨스의 책상 위에 놓이기를 기대한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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