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문에서 읽은 두 개의 기사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하나는 청와대가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를 다음 달 출범시키기 위해 막바지 인선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 새 이사장을 선출했다는 기사다.
두 개의 기사는 '사회통합'과 '밀어내기'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요한 국정과제로 사회통합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가 덕망 있는 인사들을 모아 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민간 장학재단의 운동권 전력 임원들을 밀어내는 모습은 이 정부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회통합이 무엇인지 의심하게 한다.
'물갈이'의 악순환
'물갈이'를 이번에 처음 겪는 것은 아니다. 1998년 정권교체를 이룬 진보 세력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보수세력을 철저하게 밀어내는 물갈이를 단행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때로는 보복과 탐욕과 덜 익은 이념의 냄새가 났다.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보수 정권은 다시 사회 곳곳에서 진보 세력을 밀어내고 있다. 국민들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거듭되는 이런 악순환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나는 물갈이가 불가피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정부가 대선 승리의 전리품 챙기듯이 부처마다 샅샅이 대상을 찾아내어 사람을 바꾸는 것을 보면서 실망과 혐오감을 느낀다. 그리고 두 번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회의를 갖게 된다.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은 최근 이사 2명과 이사장을 바꿨다. 이사회를 통해 합법적으로 임원 개선을 했고, 자격이 충분한 사람들이 뽑혔는데 무슨 시비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내용은 그렇지가 않다. 우선 이 재단은 물갈이의 대상으로 적절치 않다. 이 재단은 삼성이 사회에 환원한 8,000억 원으로 만들었고 국민 세금이나 기부금, 또는 국가 재산이 한 푼도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런데도 주무관청 공무원이 재단 임원을 만나 "정권이 바뀌었으니 물러나 달라"고 요청했고, "만장일치로 선출해 달라"면서 이사 후보와 이사장 후보를 추천했다.
재단 출범에서부터 이사장을 맡아 3년 동안 좋은 재단으로 키워온 신인령 이사장을 '노무현 정부가 이사장으로 밀었던 진보세력'으로 분류해 퇴진압력을 넣었던 것도 설득력이 없다. 그는 대학시절 운동권이었고 노동법 학자로 노동운동에 간여했던 전력이 있다. 그러나 이화여대 총장을 지내면서 한 번도 이념이 문제가 된 적이 없고, 중도성향의 사회지도층 인사로 꼽히는 그를 '노무현의 사람, 한명숙의 친구'로 몰아세우는 게 과연 옳은가.
'좌파' 전력이 문제가 된 다른 이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대~30대의 운동권 경력과 그로 인한 전과가 있다 해도 사면 복권되어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내어 문제 삼는다면 지금이 2009년인지, 군사독재 시절인지 헷갈린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8ㆍ15 경축사에서 "계층, 이념, 지역, 세대 등의 차이에 따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통합위를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회통합' 이란 말이 적절한 것 같지는 않지만, 양극화로 인한 갈등을 줄여나가면서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핵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곳곳에서 진행돼 온 무리한 '밀어내기'는 통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
다양한 사회가 튼튼하다
다양한 이념과 주장을 하나로 통합하는 게 아니라 나와 다른 주장에 귀 기울이고 서로를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통합의 첫 걸음이다. 다양한 세력이 공존하는 사회가 튼튼하다. 재벌이 헌납한 돈으로 만든 장학재단에 운동권 출신들이 많이 참여하여 가난한 학생들을 돕는 독특한 재단으로 키워가는 것이 그렇게 위험한가. 보수는 영원히 온건하고 진보는 영원히 불온한가. 사회를 통합하려는 노력에 앞서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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