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면서 노벨 수상자 발표가 잇따랐다. 노벨상 가운데 유난히 예측하기 힘든 것이 문학상과 평화상이다. 올해 오바마 미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은 특히 놀라운 일이었다.
이 노벨상의 계절에 영국의 권위지 더 타임스가 평가한 <세계 대학 랭킹> 을 발표했다. 상위 100개 대학에 든 한국 대학은 서울대와 KAIST, 두 곳뿐이다. 서울대가 49위에 올라 처음 상위 50개 대학에 진입했다. 그런데 미국 대학은 상위 100개 대학에 33개, 상위 10개 대학에 6개 대학이 포함됐다. 세계>
노벨상 수상 실적에 비중을 두는 상해교통대학교의 2008년 <세계 대학 학문적 랭킹> 을 보면 미국 대학은 상위 100개 대학에 54 곳, 상위 10개 대학에 8 곳이나 세계>
들었다. 한국 대학은 하나도 없다. 물론 이런 대학 랭킹 평가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많다. 그러나 미국의 '학문적 위상'이 막강한 것은 사실이다.
미국은 어떻게 매년 노벨상 시리즈에서 완승을 거둘 수 있을까? 미국 대학은 어떻게 상위 랭킹을 거의 다 차지할 수 있을까?
언뜻 '국력'이라는 대답이 나올 수 있다. 미국의 경제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크고 군사적으로는 초강대국이다. 과학, 기술, 대중문화 등 많은 분야에서 영향력이 큰 나라다. 그렇지만 2000년 대에 들어와 미국은 많은 문제를 겪고 있다. 또 유럽 통합과 중국의 부상 등 세계 질서의 변화에 따라 상대적으로 국력이 작아지는 추세이다. 따라서 국력만으로 따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중국, 일본,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대학은 국력에 비해 대학 랭킹 평가에서 위상이 낮다. 더 타임스와 상해교통대학의 대학 랭킹에 상위 10위 안에 든 대학은 하나도 없다. 러시아에서 나온 랭킹 평가에서 모스크바대학교와 도쿄대학이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그런데 이 나라들의 국력을 합하면 미국보다 훨씬 크다. 국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브라질이나 인도는 대학 랭킹 평가에서 상위 100개 대학에 하나도 들지 못한다. 이에 비해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등 서유럽의 인구가 작은 나라와, 영어권인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은 국력에 비해 대학 랭킹 평가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와 대학의 학문적 위상은 단순한 국력이나 경제적 토대보다는 학문의 자유, 경쟁적 분위기, 그리고 열린 제도가 함께
융합돼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자유로운 경쟁이 없는 대학, 폐쇄적 제도와 관습에 갇힌 대학에는 아무리 투자를 해도 미국을 비롯한 앞선 나라와 대학의 학문적 위상을 따라 잡기 힘들 것이다.
한국은 민주화와 꾸준한 경제성장으로 학문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경쟁과 열린 제도를 도입하는 노력도 많이 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 실적을 창출하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경쟁적 분위기와 열린 제도를 확대해 나가고 우수한 연구자에게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에는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학자가 많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우수한 연구자일수록 경쟁적 연구 분위기와 열린 제도를 선호한다. 또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우수한 연구 환경을 찾아 어디로든 가는 '이동 인력'이다. 한국에도 세계의 우수한 '이동 인력'이 모이는 매력을 쌓아가면 노벨상 수상자가 한국에서 나오는 날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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