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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천하를 얻은 글재주'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입력
2009.10.2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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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사오찬 지음ㆍ박성희 옮김 북스넛 발행ㆍ338쪽ㆍ1만8,000원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한(漢)의 무제(BC 156~87)는 북으로 흉노, 동으로 고조선, 남으로 월을 쳐서 꿇리고 서로는 실크로드를 열었다.

소금과 철을 전매해 재정을 다졌고 동중서(BC 170~120) 같은 대유(大儒)를 등용해 제국의 틀을 잡았다.

무제에겐 사마천(BC 145~86)이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그는 BC 98년 황제를 기만한 죄로 궁형에 처해졌다. 사마천이 분노와 치욕 속에 <사기> 라는 걸작을 남긴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2,000년이 흐르고 무제와 사마천은 함께 역사가 됐는데, <사기> 의 존재를 통해 둘의 위상은 역전된 듯하다. 휘황했던 무제의 영광은 다만 몇 줄 앙상한 기술로만 남았고, 일그러진 인생을 딛고 붓을 쥔 사마천의 꿈은 <사기> 속에서 여전히 형형하다.

<천하를 얻은 글재주> 는 사마천처럼, 글로써 "진정으로 천하를 얻은" 고대 문인들의 이야기다. 중국 삼소문화연구원에 재직 중인 학자인 저자 류사오찬은 문인들의 삶과 시대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고전을 밑감 삼아 읽을거리로 엮은 다이제스트는 지겨울 만큼 많다. 외형만 놓고 따지면 이 책도 그 식상함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차별점은 저자의 태도, 혹은 저술 의도에서 엿볼 수 있는데 둔중한 목소리 속에 날카롭게 벼린 날이 서 있다.

"개혁개방 구호 아래 경제가 고속행진하면서 오늘날 중국은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면서 억압으로 쪼그라든 욕망은 상품의 물결과 함께 팽창되고 또 팽창되었다. 쪼그라든 욕망도 문제였지만 부풀대로 부푼 욕망은 더 큰 문제가 되었다. 가치적 이성은 도구적 이성의 위협을 받은 지 이미 오래며, 욕망으로 우리의 영성은 피폐해졌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더 이상 시적 감동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저자가 고른 글들은 그래서, 소란한 수사로 자연을 예찬하는 것보다 평담(平淡)한 말투로 질곡의 세상을 관조하는 것이 많다. 저자가 첫째 문인으로 소개하는 굴원(BC 343~278)의 대표작 '이소(離騷)'다.

"바른 말이 해로움이 됨을 알았으나/ 차마 그냥 버려둘 수 없었네/ 하늘은 내 곧음을 인정하리/ 오직 임을 위해 그리한 까닭을… 비록 내 몸 찢어져도 변치 않으리니/ 어찌 내 마음에 경계함이 있으랴."

전투적인 문장으로 3,000년 중화문명의 흔적을 영원에 새긴 사마천, 자연을 닮은 영성주의자 도연명(365~427), 광기와 야성의 유랑 시인 이백(701~762), 관음보살처럼 세상의 고통을 듣는 시성 두보(712~770) 등 아홉 문인의 글과 삶이 두름으로 엮여 이어진다. 댑싸리비로 가을 마당을 정갈히 쓸어내는 듯한 글들이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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