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사오찬 지음ㆍ박성희 옮김 북스넛 발행ㆍ338쪽ㆍ1만8,000원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한(漢)의 무제(BC 156~87)는 북으로 흉노, 동으로 고조선, 남으로 월을 쳐서 꿇리고 서로는 실크로드를 열었다.
소금과 철을 전매해 재정을 다졌고 동중서(BC 170~120) 같은 대유(大儒)를 등용해 제국의 틀을 잡았다.
무제에겐 사마천(BC 145~86)이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그는 BC 98년 황제를 기만한 죄로 궁형에 처해졌다. 사마천이 분노와 치욕 속에 <사기> 라는 걸작을 남긴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사기>
2,000년이 흐르고 무제와 사마천은 함께 역사가 됐는데, <사기> 의 존재를 통해 둘의 위상은 역전된 듯하다. 휘황했던 무제의 영광은 다만 몇 줄 앙상한 기술로만 남았고, 일그러진 인생을 딛고 붓을 쥔 사마천의 꿈은 <사기> 속에서 여전히 형형하다. 사기> 사기>
<천하를 얻은 글재주> 는 사마천처럼, 글로써 "진정으로 천하를 얻은" 고대 문인들의 이야기다. 중국 삼소문화연구원에 재직 중인 학자인 저자 류사오찬은 문인들의 삶과 시대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천하를>
고전을 밑감 삼아 읽을거리로 엮은 다이제스트는 지겨울 만큼 많다. 외형만 놓고 따지면 이 책도 그 식상함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차별점은 저자의 태도, 혹은 저술 의도에서 엿볼 수 있는데 둔중한 목소리 속에 날카롭게 벼린 날이 서 있다.
"개혁개방 구호 아래 경제가 고속행진하면서 오늘날 중국은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면서 억압으로 쪼그라든 욕망은 상품의 물결과 함께 팽창되고 또 팽창되었다. 쪼그라든 욕망도 문제였지만 부풀대로 부푼 욕망은 더 큰 문제가 되었다. 가치적 이성은 도구적 이성의 위협을 받은 지 이미 오래며, 욕망으로 우리의 영성은 피폐해졌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더 이상 시적 감동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저자가 고른 글들은 그래서, 소란한 수사로 자연을 예찬하는 것보다 평담(平淡)한 말투로 질곡의 세상을 관조하는 것이 많다. 저자가 첫째 문인으로 소개하는 굴원(BC 343~278)의 대표작 '이소(離騷)'다.
"바른 말이 해로움이 됨을 알았으나/ 차마 그냥 버려둘 수 없었네/ 하늘은 내 곧음을 인정하리/ 오직 임을 위해 그리한 까닭을… 비록 내 몸 찢어져도 변치 않으리니/ 어찌 내 마음에 경계함이 있으랴."
전투적인 문장으로 3,000년 중화문명의 흔적을 영원에 새긴 사마천, 자연을 닮은 영성주의자 도연명(365~427), 광기와 야성의 유랑 시인 이백(701~762), 관음보살처럼 세상의 고통을 듣는 시성 두보(712~770) 등 아홉 문인의 글과 삶이 두름으로 엮여 이어진다. 댑싸리비로 가을 마당을 정갈히 쓸어내는 듯한 글들이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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