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사파이어는 뉴욕타임스의 정치 칼럼니스트로 2005년까지 명성을 날렸다. 제임스 왓슨은 DNA 구조를 발견하여 노벨의학상을 공동수상한 과학자로서 사파이어와 우정을 나누던 사이였다. 2000년대 초반 왓슨이 칠순에 들어선 사파이어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절대 은퇴하지 말게. 자네의 두뇌는 운동이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뇌가 위축되고 말거든."
제2인생 위한 '장수 전략'
이 충고의 영향인지 사파이어는 75세까지 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고, 그 후에도 계속 잡지에 글을 썼을 뿐 아니라 뇌과학을 지원하는 '다나 재단' 회장을 맡는 등 열정적으로 살다 9월 28일 타계했다.
사파이어가 2005년 뉴욕타임스에 쓴 마지막 칼럼 제목은 '절대 은퇴하지 말라'였다. 그는 이 글에서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가 의술의 발달로 90세 이상 살게 될 것이라며 개인의 '장수(長壽) 전략'을 생각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장수는 정신생활이 유지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몸은 유지되는데 두뇌 활동이 흐릿해지면 자신과 사회에 짐만 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사파이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권장한다. 첫째가 절대 은퇴하지 말라는 것이고, 둘째가 경력을 바꿀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장수 사회'로 진입했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가 되는 '고령화 사회'는 이미 2000년에 진입했고, 2018년이면 그 비율이 14%가 되는 '고령 사회'에 이른다. 노인 인구가 20%를 초과하는 '초고령 사회'도 2026년에 도달한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와 출산율 저하 속도가 유별나게 빠르다. 여기에 소리 없이 사회를 어둡게 짓누르는 것이 퇴직자 문제다. 정년이 낮아졌을 뿐 아니라 조기 명퇴가 사회 풍조로 자리 잡으면서 퇴직자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어느 거대 공기업 한 곳에서만 올해 퇴직자가 1,600명에 이른다고 한다.
2006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퇴직연령은 54세다. 수명연장 추세로 볼 때 이들에게 남은 삶은 30년이 넘는다. 이들은 '은퇴의 정서'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다. 30년 세월을 경제적으로 버티는 것도 힘들지만, 하릴없이 그 긴 세월을 소일하는 것도 문제다. 연금과 재산에 여유가 있는 사람도 허구한날 해외여행이나 가고 골프만 칠 수 없는 노릇이다.
마르쿠스 키케로는 로마 공화정 말기 정치인이자 문장가로서 노년의 경험과 지식을 칭송했다. <노년에 관하여> 란 책에서 "인생의 매 단계에는 특징이 있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 철이 되어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년에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항해하는 배의 키잡이, 조타사에 비유했다. 체력이나 민첩성은 떨어지지만, 큰 일은 판단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년에>
아직 노년이라 부르기도 어색한 50대 퇴직자들의 경험과 지식은 약간의 재훈련만 한다면 사회적으로 귀중한 자산이다. 이들이 나이에 적합한 일을 찾아 새롭게 사회에 복귀하는 '제2인생' 또는 '인생 이모작'은 개인의 행복한 노후생활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사회경제적으로도 중요한 문제다. 퇴직자들을 방치하면 곧 경제적 짐이 될 뿐 아니라 사회를 무기력한 기운으로 채울 것이다.
퇴직인력 활용 정책 개발을
퇴직자들의 제2인생은 일단 본인들의 몫이다. 퇴직 전부터 눈높이를 조절하고 자기가 살아갈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훈련과 함께 가치관을 정립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도 장수시대에 대비하여 퇴직 인력을 사회적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 정년을 조절하고 일자리를 나누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정부와 기업의 영역을 넘어서는 제3섹터, 즉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는 퇴직자들을 흡수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다.
김수종 언론인ㆍ<고마워라 인생아> 필자 고마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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