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뒹굴어 쓸쓸했던 2006년 어느 가을날, 독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귀를 쫑긋 세워 듣지 않으면 안될 만큼 어눌한 말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떠듬떠듬 들려왔다. 그는 자신을 소아마비 때문에 장애를 갖게 된 20대 여성이라고 소개한 뒤 말을 이어갔다.
"디(지)하철 타다 대변이 마뎌(려)워 화당(장)실 가터(갔어)요. 남다(자) 화당실과 여다(자) 화당실 사이 당(장)애인 화당실이 딱 하나 있는데 '당애인용'이라고만 표시돼 있어요. 여다 것인지, 남다 것인지 표시 없어요. 그냥 같이 쓰는 거에요. 들어가야 할디(지), 말아야 할디(지) 몰라서 망털(설)이다가 결국 못 참고 들어가려는데 그때 남다 당애인이 안에서 나오는 거에요. 얼마나 탕(창)피했는데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냥 들어가 대변봐터(봤어)요. 그런데 혹시 남다 올까 계톡(속) 무터(서)웠어요. 당애인은 여다 남다 그런 건 없나요."
3년 전의 케케묵은 기억을 신기하게도 반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지하철역의 남녀 공용 장애인 화장실 문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시 국감 자료를 보면 서울 1~8호선 지하철역 259곳 중 장애인 화장실이 남녀 공용으로 돼 있는 역은 44.8%인 116곳이나 된다.
지하철에서 장애인 화장실을 남녀 공용으로 설치하는 것은 불법이다. 2005년 도입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공공건물과 공중이용시설 등의 장애인 화장실과 관련, '장애인용 대변기는 남자용 및 여자용 각 1개 이상을 설치해야 한다'고 남녀 구분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와 지하철 운영 주체인 서울메트로 및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무슨 고질병 같다. 매년 국감마다 씹히지만 해소될 기미가 없다. 남녀 공용 장애인 화장실을 남녀 구분 화장실로 바꾸는 개선 사업을 하고는 있지만 예산을 너무 찔끔찔끔 투입하기 때문이다.
물론 위안이 되는 것도 있다. 지난해 통계를 서울시에 물어봤더니 당시 남녀 공용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지하철역의 비율이 62%였다. 올해가 절반 아래니 1년 새 많이 감소한 것이다. 올해 서울시와 두 공사는 '여행(女幸)프로젝트'(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를 추진하면서 장애인 화장실의 남녀 분리 공사에 114억원(서울시 예산 37억원 포함)을 썼다. 개선 사업이 시작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들어간 돈 48억원의 2배가 넘는 금액이다.
이 정도로 계속 예산이 투입된다면 3년이면 남녀 공용 장애인 화장실을 모두 없앨 수 있다. 그런데 서울시가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겠다는 목표 연도는 2014년. 앞으로는 올해 수준의 예산을 유지하지 않고 줄이겠다는 뜻이다.
시작 연도가 2004년이고 목표 연도가 2014년이니 사업 기간은 무려 10년이 넘는다. 사업 내용이 복잡하고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국책 사업도 아닌데 이렇게 장기간 계속하는 게 이해가 안된다.
올해 예산 규모인 114억원 정도는 서울시와 두 공사가 감당 못할 정도의 큰 돈은 아니다. 이 수준의 예산을 3년 간 투입해 문제를 깨끗이 해결했으면 한다. 장애인을 위한 소박한 마음만 있다면 투자 순위를 조금 끌어올리는 일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은호 생활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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