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고등학교 2학년 미혼모를 면담한 적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이를 출산한 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려다 성공적으로 학업을 지속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남자 친구와는 헤어졌고 아이는 남자 친구의 할머니가 키운다고 했다. 학업을 지속하도록 동기화시켜 준 것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더니, 대답 중 하나가 여대생 멘토 언니였다. 정기적으로 만나 함께 놀러 가고 교회도 가고 학습지도도 해주고 인생이야기도 해준 그 언니를 보면서 자신도 대학생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열심히 공부하던 그녀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인생 경험과 사랑 나누기
얼마 전, 아는 중학교 교사로부터 깊은 관계로 발전한 이성문제 때문에 방황하고 있는 학생에 대한 도움을 요청 받았다. 이혼가정 자녀인 그 학생은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다른 형제와도 분리되어 살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상담 받을 기관을 소개해주는 대신 좋은 성품과 사회복지 지식을 지닌 대학원생을 멘토로 연결해 주었다. 멘토에게는 아이를 문제 학생으로 보지 말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야 할 동생으로 봐달라고 했다. 그리고 인생의 선배로서, 충고자로서, 언니로서 그 학생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가능하면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보며 응원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된 일이겠냐고 그는 말했다.
며칠 전 15세 소녀가 자신의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를 신고한 14세 소녀를 아파트 난간에서 밀어 떨어뜨려 죽게 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가해 소녀는 부모 이혼 후 할머니 슬하에서 성장하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청소년 쉼터를 전전하였다고 한다. 기사를 접하면서 잔인한 아이, 피 한 방울 안 나올 아이라는 생각보다 누군가로부터 충분한 애정과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면 일탈자가 아니라 행복한 청소년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멘토(Mentor)는 원래 호머가 쓴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게 된 오디세우스가 친구인 멘토에게 아들 텔리마쿠스를 부탁하였다. 멘토는 선생이자 충고자, 때로는 친구 또는 아버지로서 텔리마쿠스를 가르치고 상담하고 충고하였다. 이후 고대 그리스에서는 젊은 남성을 아버지의 친구나 친척 중에 경험 많은 남성과 짝지어주어 멘토의 경험과 가치관을 배우고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관습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그 후로 멘토는 지혜와 신뢰를 바탕으로 이끌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요즈음 주변에는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주는 부모나 형제자매, 좋은 충고나 격려를 주는 친구, 관심과 존중을 주는 스승을 갖지 못한 청소년들이 많다. 이들은 사회가 중시하는 도덕과 가치를 어디서 전수받을 수 있을까?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생 지식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사랑, 관심, 소속감, 인정, 존중과 같은 인간의 기본욕구를 어디서 충족시킬 수 있을까? 이제 우리는 이들에게 물질적 도움을 던져주는 것만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이런 도움만으로 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건강한 미래 함께 꿈꿨으면
입양 부모나 위탁가정 부모가 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각자의 일정 속에서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의 멘토가 되어줄 수는 있지는 않을까? 이제 대학생들도 단기성 봉사에서 눈을 돌려 1년, 2년, 아니 그 이상을 어린 청소년들과 함께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알코올중독자 아버지와 정신지체 어머니와 누나를 가진 초등학교 3학년 민수, 아직은 얼굴에 미소가 환하지만 인생을 제대로 이끌어 줄 멘토를 만나지 못한다면 언젠가 그 아이를 뉴스에서 마주칠 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든다. 문제가 표출되기 이전에 이들의 인생에 긍정적인 개입을 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는 듯 하다.
홍순혜 서울여대 사회복지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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