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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조선 선비, 일상의 사물들에게 말을 걸다' 죽음 앞두니 소소한 사물마저 눈물겹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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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조선 선비, 일상의 사물들에게 말을 걸다' 죽음 앞두니 소소한 사물마저 눈물겹구나

입력
2009.10.2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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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지음ㆍ남현희 옮김/문자향 발행ㆍ304쪽ㆍ8,500원

기준(1492~1521)은 기묘사화가 일어났을 때 조광조와 함께 희생된 조선 중종 대의 학자이자 관료다. 조선왕조실록이 '학문이 풍부하여 그 명성이 조광조에 버금갔다'고 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지만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나이 서른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나라를 위해 크게 쓰일 인재였지만 잘못된 시대는 끝내 그를 비운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조선 선비, 일상의 사물들에게 말을 걸다> 는 기준이 기묘사화로 함경도 온성으로 유배가 위리안치돼 있던 시절, 실의에 빠진 마음을 달래고 삶의 경계와 지침으로 삼기 위해 지은 글을 모은 것이다. 원제는 '육십명(六十銘)', 예순 가지 사물에 새긴 글이란 뜻이다.

그가 글로 쓴 대상은 울타리, 집, 부엌, 방, 벽, 창문, 물병, 항아리, 술잔, 이불, 수건, 붓, 송곳, 칫솔, 신발 등 일상의 사물이다. 늘 함께하기 때문에 도리어 하찮게 여겨질 그것들을 그는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숨은 의미를 찾아낸다. 저 앞에서 기웃거리는 죽음을 보면서 그는 일상의 사물을 글로 쓰면서 깨달음을 얻고자 했다. 어찌 보면 일상의 사물은 그의 유일한 말벗이었는지 모른다.

한 편 한 편 짧은 글들이지만 글쓴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에서 쓴 것이기 때문에 의미심장하고 여운이 길다. 때로 은연 중 삶의 허망함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마지막을 버티는 의지와 지조가 읽혀지고, 부모 형제에 대한 그리움도 배어난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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