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지음ㆍ남현희 옮김/문자향 발행ㆍ304쪽ㆍ8,500원
기준(1492~1521)은 기묘사화가 일어났을 때 조광조와 함께 희생된 조선 중종 대의 학자이자 관료다. 조선왕조실록이 '학문이 풍부하여 그 명성이 조광조에 버금갔다'고 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지만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나이 서른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나라를 위해 크게 쓰일 인재였지만 잘못된 시대는 끝내 그를 비운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조선 선비, 일상의 사물들에게 말을 걸다> 는 기준이 기묘사화로 함경도 온성으로 유배가 위리안치돼 있던 시절, 실의에 빠진 마음을 달래고 삶의 경계와 지침으로 삼기 위해 지은 글을 모은 것이다. 원제는 '육십명(六十銘)', 예순 가지 사물에 새긴 글이란 뜻이다. 조선>
그가 글로 쓴 대상은 울타리, 집, 부엌, 방, 벽, 창문, 물병, 항아리, 술잔, 이불, 수건, 붓, 송곳, 칫솔, 신발 등 일상의 사물이다. 늘 함께하기 때문에 도리어 하찮게 여겨질 그것들을 그는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숨은 의미를 찾아낸다. 저 앞에서 기웃거리는 죽음을 보면서 그는 일상의 사물을 글로 쓰면서 깨달음을 얻고자 했다. 어찌 보면 일상의 사물은 그의 유일한 말벗이었는지 모른다.
한 편 한 편 짧은 글들이지만 글쓴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에서 쓴 것이기 때문에 의미심장하고 여운이 길다. 때로 은연 중 삶의 허망함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마지막을 버티는 의지와 지조가 읽혀지고, 부모 형제에 대한 그리움도 배어난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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