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다 요시노리는 일본 NHK를 세계적 공영방송 반열에 올려놓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칭송을 받는다. 3번이나 회장직을 연임할 정도였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일본의 고도 성장, 컬러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경영 규모도 키웠고, 보도 시스템을 정비해 명실상부한 보도의 선두주자로 나서게 만들었다. NHK 외형 만들기에 일등공신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마에다 회장의 공로는 자민당 눈치 보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NHK가 자민당과 불편한 관계에 놓여선 안 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정부, 여당을 거스르지 않으면 외형은 자연히 커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시스템에 활기를 불어넣되 정부, 여당은 건드리지 않는 마에다 식 '정치적 개입 불가'를 고수했다.
1966년 NHK는 방송기념일을 맞아 '일본의 미래상'이란 대형 특집극을 제작한다. 내용 중에 일본의 안보와 관련된 여론조사 결과가 담겨 있었다. 일본은 향후 군사력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42%에 달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미국과의 안보조약을 지속시키려는 정부여당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는 여론 결과였다.
마에다 회장은 그 내용을 들어내도록 지시한다. 다른 여론조사 결과로 대체해 방송하도록 지시한다. 이에 대한 항의가 있자 마에다 회장은 기자회견을 갖는다. 왜 그런 지시를 내렸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정치적인 의견 대립이 국민들 사이에서 있는 경우 NHK는 그것을 격화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묘한 답을 내놓는다. NHK는 국민적 합의를 만드는 공공방송이라고 덧붙였다.
공영방송으로서 NHK는 국민 간 의견 대립을 부추기는 것을 삼가고, 서로 양보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마에다 식 방송관을 폈다. 마에다의 기자회견과 같은 시기에 자민당은 외교 안보 정책과 관련해 야당과 비판 언론에 관한 보고서를 냈다. 자민당은 여론을 분열시키려는 세력 탓에 정치 분열 상태가 벌어진다며 국가 이익상 초당파적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입을 맞춘 듯한 발언들이었다. 마에다가 3연임 9년을 버틴 배경에는 그 같은 눈치 100단의 묘기가 가장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마에다 회장 재직 중에 NHK노조는 사원들을 대상으로 NHK가 정부 편을 드는 방송인가를 질문하는 여론조사를 했다. 60%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경영규모, 시스템 정비 등 NHK의 하드웨어적 중흥에는 큰 기여를 했으나 명실상부한 공영방송으로 키우는 쪽에선 낙제점을 받았다. NHK를 키우되 비만형으로 만들고, 나쁜 피가 그 속에 돌도록 일조를 했던 셈이다.
경영상 수익을 내세우며 연임을 노리는 듯 보이는 현 KBS 수장의 모습에 마에다 회장이 겹쳐진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지만 놀라우리만치 닮아 있다. 정부 여당의 눈치를 살피는 묘기도 난형난제다. 시청자들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논란이 조금이라도 있을라치면 잘라내는 과감성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사원들로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며 배격받는 정도도 난형난제다.
다나카 가쿠에이 수상은 4연임을 노리던 마에다 회장을 내친다. 정부 여당에 대한 협조가 '2%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마에다 회장보다 더 열심히 정부, 여당을 도울 의지를 불태우던 부회장을 회장직에 앉혔다. 신임 오노 회장은 NHK 회장 자격으로 다나카 수상의 병문안을 갔을 정도니 눈치 100단 마에다 회장이라도 어찌 그 경지를 넘을 수 있었을까. NHK 연구자들은 마에다 회장은 9년 동안 자신을 가둘 덫을 스스로 만든 꼴이라고 평한다.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그 비평을 KBS 구성원도 사장도 한번쯤 되새겨보았으면 한다.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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