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남의 한 중학교는 3학년을 대상으로 진로지도교육을 실시했다가 학부모로부터 심한 항의를 받았다. 어린 나이에 기술을 배우기 시작해 크게 성공한 기계 분야의 명장을 초빙해 기능인도 얼마든지 높은 소득을 올리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강의였는데,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인문계고냐 전문계고냐의 진로 결정으로 고민하던 어린 학생들에겐 눈이 번쩍 뜨이는 새로운 삶의 모델이었던 것.
하지만 자녀로부터 "전문계고에 진학해 기계 기술을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들은 학부모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야 할 아이한테 도대체 뭘 가르친 거냐. 고작 기름밥이나 먹게 하려고 공부시키는 줄 아냐"며 학교측에 항의하기까지 했다. 기능인이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도록 만드는,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사농공상'의 현주소다.
▲ 학부모 부정적 인식이 진학의 최대 적
기능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차별은 우리나라 숙련 생태계(Skill Ecology)를 교란, 붕괴시키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기능 경시풍조는 기능인의 능력에 걸맞은 사회ㆍ경제적 대우를 어렵게 만들고, 이는 젊은 세대의 기능직 기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일반인 1,000명과 기능인 200명을 대상으로 2006년 실시한 '기능' 명칭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 일반인은 52.9%, 기능인은 65.5%가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인식은 한국일보가 최근 월드리서치에 의뢰, 역대 기능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됐다.
해당 기능 분야의 최고 실력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임에도 자녀가 기능직에 도전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응답자의 39.5%가 "사회가 기능직을 우대하지 않아서"를 그 이유로 꼽았다. 사회적 편견 때문에 말리겠다는 응답도 13.2%를 차지했다. 고졸 기능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고 응답한 메달리스트도 29.2%나 됐으며, 이 중 78.1%는 실제 나중에 대학에 진학했다.
전문가들은 별다른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는 학생들의 기능직 도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은 학부모와 교사들의 사농공상 의식이라고 지적한다. 일찍이 디자이너로 진로를 정하고 서울의 공업계 고등학교 섬유디자인과에 진학한 김민지(18ㆍ가명)양이 대표적인 경우.
어릴 때부터 예쁜 옷에 관심이 많았던 김양은 패션 디자인 분야에 취업하기 위해 전문계고에 진학, 취업을 준비해왔지만, 결국 2학년 때부터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의류회사에 다니는 어머니가 "대학 못 나오면 사람 대접 못 받는다,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승진도 하고 월급도 제대로 받을 수 있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설득했기 때문이다.
"취업을 생각하고 입학했지만 막상 와 보니 그런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어요. 어머니뿐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는다고 말리니 입시공부를 할 수밖에요."
▲ 꿈을 갖고 도전해도 돌아오는 건 냉대뿐
주변의 반대와 만류를 무릅쓰고 전문계고에 진학해 기능직에 취업하는 젊은이들도 적으나마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차가운 시선과 냉대를 견디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올 초 서울의 한 공고를 졸업하고 경기 부천의 전자회사에 취업한 이모(19)씨는 5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에서 전공인 금형기계 기술을 더 숙련해 창업을 하겠다는 게 이씨의 꿈이었지만, 회사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이씨에게 제품 포장만 시켰다. 월급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60만원밖에 주지 않았다.
"부당하다고 항의하면 이 새끼 저 새끼, 온갖 욕설이 다 나왔죠. 저는 제가 하는 쇠 깎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고, 그 일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기계는 만져보지도 못하고 욕만 먹은 거예요. 사회가 이런 거구나 싶어 당분간 취업은 생각도 안 하고 있어요."속상해 하실까봐 부모님께 말씀도 못 드렸다는 이씨는 내년 군 입대 예정이다.
부모로서는 차별과 냉대가 엄연한 현실에서 자녀에게 기능직을 권유하는 게 쉽지가 않다. 전문계고에 진학해서도 열심히만 하면 좋은 직장에 취업해 어엿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어도 결혼 문제를 생각하면 소신을 밀어붙이기가 쉽지 않다는 게 부모들의 하소연이다.
본인이 실업계고 출신으로 성공한 한 공기업 간부는 이런 소신으로 딸을 전문계고에 보냈지만, 결국 올 초 대학에 진학시켰다. "고교 진학할 때까지만 해도 적극 후원을 해줬죠. 하지만 졸업 때가 되니까 고민이 됩디다. 대학을 안 나오고도 시집을 갈 수 있을까, 대학 안 나온 사람이 거의 없는데 중매나 들어올까, 그런 고민이 닥치니 결국 대학에 보낼 수밖에 없더군요."
기능 경시냇떪?기능직 기피로, 기피는 대학진학으로, 대학진학은 학력인플레로, 학력인플레는 고졸 취업난과 기능경시로 다시 이어지는 출구 없는 악순환의 고리다.
박선영기자
김성환기자
■ '3D 업종' 편견에 기능직 기피 악순환
기능(技能ㆍskill)이란 본디 '기술을 구현하는 능력'이라는 뜻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기능과 기술 사이에는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행 기능장려법도 기능인을 "생산ㆍ제조 및 서비스 분야 등에서 숙련된 기능을 가지고 산업현장에 종사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머리 속에서 기능인은 생산ㆍ제조 분야에 직접적으로 종사하는 '3D업종 종사자' 의 이미지로 고착돼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기능인 경시 풍조는 특히 언어생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한국노동연구원이 2006년 학부모 및 초ㆍ중ㆍ고 교사 1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 인터뷰 결과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녀가 학교생활에 불성실하거나 성적이 부진할 때 학부모들이 주로 하는 말로는 "내가 너를 공돌이 만들려고 공부시킨 줄 아니?" "너 그렇게 하다가는 네 아빠(삼촌 친지 등)처럼 그런 일(생산기능직)이나 한다" 등이 꼽혔다.
교사들은 주로 "나중에 학교 앞 카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살래?" "공장 견학할 때 더러운 기름 묻히면서 일하는 사람들 봤지? 그렇게 살래?" 등의 말로 경각심을 촉구했다. 실업계 교사들도 "공부를 못하면 기술이라도 익혀야 할 거 아냐" 처럼 기능인을 경시하는 말을 예사로이 내뱉는 걸로 조사됐다.
이런 대화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기능 및 기능직에 대한 편견은 물론 기능인이 되면 안 된다는 극단적인 인식까지 갖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기능직 기피 현상으로 나타나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국가기술자격증 체계도 기능인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을 반영한다. 기능사-산업기사-기사-기능장-기술사로 이어지는 기술자격증 체계에서 기능사는 가장 하위에 자리한 등급.
한국산업인력공단 임건희 기능장려팀장은 "낮은 직급에는 모조리 기능이라는 말이 들어가고 높은 직급에는 기술이란 말이 들어가니 기능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아질 리가 있냐"며 "기능인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도록 자격증 체계와 용어를 변경,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 김 빠진 金메달/ 올림픽 입상자 인센티브 적고 병역특례도 가물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메달리스트에게는 다양한 포상과 특전이 주어진다. 하지만 대회 통산 16회 종합우승으로 기능강국 코리아의 위상을 세계에 널린 알린 공로에 비해 인센티브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일보가 월드리서치에 의뢰한 역대 메달리스트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기능장려금 등 사후 보상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36.8%로 '만족한다'고 답한 23.2%보다 훨씬 많았다.
국가에서 기능올림픽 입상자에게 포상개념으로 운영하는 제도로는 상금 및 훈장 수여,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 기능장려금지급 등이 있다. 금메달은 상금 5,000만원에 동탑산업훈장, 은메달은 2,500만원에 철탑산업훈장, 동메달은 1,700만원에 석탑산업훈장을 수여받고, 병역대체 복무로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된다. 해당 분야 국가기술자격 산업기사 자격시험도 면제 받는다.
메달리스트들이 입상 종목과 동일한 분야에 취업하면 지급되는 기능장려금은 1년차부터 10년차까지 차등을 두어 지급되고 있으며, 10년차 이후부터는 10년차 기준이 적용된다. 매년 6월 30일 기준으로 입상 종목과 동일한 업무에 1년간 종사했을 경우에 한해 지급하고 있으며, 1년 미만 근무했거나 입상한 직종과 다른 분야에 근무한 경우에는 지급되지 않는다.
올해 기준으로 금메달이 1년차 392만원, 10년차 이상 495만원이며, 은메달이 1년차 335만원, 10년차 이상 421만원이다. 동메달 1년차 278만원, 10년차 이상 346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체육 분야와 비교하면 빈약하다는 평가다. 체육 분야 올림픽에서 입상한 선수들에게는 별도 조건 없이 매월 최대 100만원까지 경기력향상연구연금이 지급되지만, 기능 분야의 입상자들에게는 '입상직종과 동일 분야 1년 종사'라는 조건이 붙어 차별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체육ㆍ예술 분야 특기자의 병역 특례는 잔존한 반면 기능 분야 병역대체 복무인 산업기능요원제도는 2012년 이후 폐지될 예정이라 현장의 불만이 매우 높다.
박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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