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애호가 중견기업 임원 이모(52)씨는 일년에 한 두 차례 일본의 와인샵에 들러 고가 와인을 구입하고 있다. 이 씨는 "같은 와인이라도 일본에서는 한국의 절반 이하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몇 병만 사면 왕복 항공권 값이 빠진다"며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한국보다 저렴하게 와인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늘 신기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은 20일 농림수산식품부 국정감사에서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칠레산 와인의 관세(15%)가 면제됐지만 와인값은 하락하지 않고 올들어 오히려 상승하는 현상까지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신의 물방울인가, 가격거품 덩어리인가. 국내 와인가격을 둘러싼 논란이 새삼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한ㆍ칠레 FTA가 체결된 지 5년. 여기에 한ㆍEU FTA 체결까지 앞두고 주류에 부과하는 관세면제혜택에 따라 와인가격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고 있지만, 국내 와인가격은 요지부동이다. 특히 우리나라 와인값은 이웃 일본(2배)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가격에 형성돼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21일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와인이 일본의 와인에 비해 비싼 것은 현지에서의 수입가격 자체가 일본에 비해 비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일본이 지난 해 1~8월 수입한 와인이 1,946만 케이스(4.5L짜리 6병기준)인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 한해 통틀어 533만 케이스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와인을 많이 구입해주는 업자에게 가격을 낮춰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와인에 부과하는 세율이 다른 것도 와인값 격차를 벌어지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우리나라는 와인가격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종가세'인 반면, 일본은 가격에 상관없이 무게에 따라 세금을 메기는 '종량세'를 적용하고 있다. 정부는 특히 자국술 보호를 위해 관세, 주세, 교육세 등 65%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관세 118엔, 주세 35엔이 고작이다. 여기에 최종 제품가의 5%가 소비세로 붙는다.
업계 관계자는 "수입원가가 10만원짜리 와인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16만5,000원이 되지만, 일본에서는 11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통단계에서도 가격거품 요인이 생긴다. 현재 와인의 유통구조는 수입회사-도매상-소매상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30~40% 가량의 중간마진이 붙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와인 값을 부추기는 가장 큰 요인은 '와인값은 비쌀수록 좋은 술'로 여기는 소비자들의 인식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모 와인동호회 관계자는 "와인을 마시는 것이 신분 과시의 수단으로 되는 사례가 늘면서 무조건 비싼 와인을 선호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며 "업자들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 가격 올리기에 나서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한 업자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특히 지난 해부터 프랑스를 제치고 국내 와인판매 1위 자리에 오른 칠레와인업계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칠레와인의 가격 부풀리기 의혹을 부인하고 나섰다.
최근 방한한 칠레 1위 와인생산업체(와이너리) 콘차이토로의 이사벨 길리사스티(50) 마케팅 총괄이사는 "제로 관세의 혜택보다 칠레 포도재배지의 땅값이 크게 올랐고, 여기에 인건비 및 환율상승까지 겹쳐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며 "오히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와인에 비하면 인상폭이 적다"고 해명했다.
한창만 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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