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0km.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39)가 20년 동안 뛴 마라톤 풀코스 거리다. 42.195km를 무려 41차례 완주했다. 연습량까지 치면 4만2,541km로 지구 4바퀴 정도 돈 셈이다. 그 마지막 무대에 선 이봉주는 그 동안의 흘린 땀방울 만큼이나 큼지막한 눈물로 작별인사를 했다. 작은 눈에 태극마크가 박힌 머리띠를 매고 역주하는 '봉달이'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국민과 함께 달려온 '봉달이'가 은퇴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 인사를 큰절로 했다. "그 동안 너무나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일일이 찾아 뵙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도 멋지게 장식했다. 21일 대전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 마라톤 은퇴경기에서 이봉주는 월등한 기량으로 1위 테이프를 끊었다. 2시간 15분25초. 불혹의 나이에도 믿기지 않는 투혼이자 값진 우승이었으며 유종의 미였다.
눈물의 은퇴식
21일 전국체전에서 은퇴 레이스를 우승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이봉주. 그는 2시간17분42초로 2위 를 기록한 유영진(30ㆍ충북)에 2분 가량 앞선 가운데 한밭종합운동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마지막 한 바퀴의 트랙을 돌면서 그는 머리띠를 벗어 든 채 관중들에게 인사했다. 아직도 힘이 남아 돌아 보였고 여유가 넘쳤다.
1990년 청주에서 열린 전국체전에서 처음으로 완주에 도전해 2시간19분15초를 기록, 2위로 골인한 것을 시작으로 이날까지 41차례째나 풀코스를 뛰었다.
이봉주의 고향은 충남 천안. 그는 마지막 은퇴무대를 고향을 위해 뛰겠다는 생각에 이번 전국체전을 은퇴무대로 삼았고 이날 시상식 직후 충남도청에서 이봉주의 은퇴식이 열렸다. 이완구 충남도지사, 오동진 대한육상연맹 회장, 최종준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오인환 삼성전자 육상 감독 등 각계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은퇴식은 초등하교 졸업식보다 숙연했다. 이봉주 의 선수시절 동영상이 나오자 그는 눈물을 훔쳤다.
마지막 인사말에서도 그는 눈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까지 받은 많은 사랑에 감사 드린다"라고 말한 이봉주는 눈물 때문에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지금까지 육상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이 몇 번이나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봉주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인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봉달이? 오뚝이!
이봉주의 별명은 '봉달이'다. 이름과 연관이 있지만 조금은 어눌하고 지극히 친근감이 드는 데서 비롯된 별명이다. 그러나 그는 외모와 달리 승부세계에서는 독종이자 오뚝이 인생을 걸어왔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에게 맞지 않기 위해 복싱과 태권도를 했다. 그리고 천안농고에 진학하면서 육상과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팀이 해체되면서 고등학교를 세 차례나 전학해야 하는 진통도 겪었다. '인생은 마라톤이다'라는 말을 보여 주듯 그는 근면, 성실, 우직했다.
1993년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호놀룰루국제마라톤에서 2시간13분16초로 1위를 차지한 이봉주는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12분39초로 은메달을 따냈다. 98년 네덜란드 로테르담마라톤에서 2시간7분44초라는 한국신기록으로 2위에 올랐다. 그 해 방콕아시안게임에서는 2시간12분32초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0년 도쿄 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7분20초는 9년째 한국기록으로 남아 있다. 2001년 보스턴마라톤(2시간9분43초),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2시간14분4초)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봉주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14위에 그치며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2007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막판 역전 레이스를 펼쳐 2시간8분4초로 보스턴 마라톤 이후 6년 만에 국제대회 우승컵을 안았다. 양쪽 발의 크기가 다른 짝발이자 평발인 이봉주의 육상 인생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이봉주는"후배들이 더 적극적인 레이스를 펼칠 필요가 있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당분간 쉬면서 진로를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대전=정동철 기자 ba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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