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는 작지만 단단해 보였다. 이제 막 '초보' 딱지를 뗀 신인 배우 같지 않았다. 자신이 맡은 배역과 연기에 대해 또박또박 조리있게 설명하는 모습이 그의 앞날을 가늠케 했다. 지난해 '미쓰 홍당무'에서 '전따'(전교 왕따) 서종희 역을 맡아 대한민국영화대상 신인여우상 등 상 7개를 받은, 충무로의 기대주다웠다.
서우는 29일 개봉하는 '파주'에서 형부 중식(이선균)에게 연심을 품은 위태로운 여자 은모 역을 맡았다. 언니에 대한 연민과 언니의 남자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율배반적 감정을 그는 중학교 3학년의 앳된 얼굴과 23세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체현한다. '파주'의 영화적 완성도의 많은 부분은 그의 연기에 기댄 면이 적지 않다.
'파주'의 출연 결정은 쉽지 않았다. 서우는 TV드라마 '탐나는 도다' 촬영을 위해 제주도에서 강행군하던 시절 '파주' 시나리오를 읽었다. 그는 "('질투는 나의 힘'으로 유명한) 박찬옥 감독이라는 이름이 부담스러웠고, 이런 좋은 작품을 내 연기로 망치지나 않을까 겁이 나 주저했다"고 말했다.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 등이 '이건 네 영화'라며 용기를 줘 힘을 얻었다"고 했다.
우리 나이로 25세지만 그는 "중학생 연기보다 성인 모습이 오히려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처음 하는 성인 역할인데다, 시나리오에서 중학생 시절부터 쌓인 은모의 중식에 대한 복합적이고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신 연령은 아마 18세일 것"이라며 미소 짓는, 160㎝가량의 이 배우는 "출연 제의의 90%가량이 미성년자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충무로의 샛별로 떠오른 그이지만 정작 오래도록 배우의 꿈을 품었던 건 아니다. "내 얼굴이 그리 예쁘게 생긴 것도 아니고 배우는 처음부터 다르게 태어난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피겨스케이팅이었다. "다섯 살 무렵 시작한 피겨스케이팅은 선수를 할 마음으로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했다"고 말했다. 피겨스케이팅을 위해 함께 배운 무용은 예술중학교 진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만화나 좋아할 다섯 살 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빠졌다"는 그의 몸은 어려서부터 연기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대학(수원과학대 방송연예학과)도 그저 재미있겠다 싶어서였지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가진 않았다"고 했다. "소중한 추억 하나 만든다"는 생각에 장진 감독의 영화 '아들'에 덜컥 출연했고, 연기 생활이 시작됐다. "쉽게 생각하고 덤볐는데 첫날 한 장면만 7시간가량 찍어 너무 힘들었다"고 그는 데뷔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미쓰 홍당무'를 찍기 전까진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어요. 이경미 감독과 공효진 언니를 통해 연기의 재미를 알게 됐어요. '더 열심히,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거죠."
서우는 "아직 신인인데 지나친 기대나 관심을 받아 힘들 때도 있다. 발성 등에 대한 기초도 없이 그저 느낌에 의해 연기를 하는 것 같다"며 스스로를 낮췄다. 그는 "언젠가 꼭 대학을 다시 들어가 연기를 이론적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일단 좀 쉬고 싶다"고 했다. "CF와 영화, 드라마 촬영 때문에 2년가량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고도 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서도 하루 스케줄이 13개 정도였어요. 부산영화제는 처음이라 제대로 즐기고 싶었는데…. 내년에는 부산에 운동화 신고 모자 쓰고 가고 싶어요. 마음대로 회도 먹고 포장마차촌 가서 부산 소주도 마시려고요."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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