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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단풍이 깊으면 추위도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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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단풍이 깊으면 추위도 가깝다

입력
2009.10.2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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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단풍은 유난히 아름답다. 해 가림이 없는 대로변에서 햇빛은 고스란히 나무의 몫이기 때문이다. 단풍색은 초록색을 나타내주던 엽록소가 가을 찬 바람에 파괴되고, 초록색에 가려져 있던 색이 드러나거나 색다른 색소가 합성되면서 만들어진다. 가을빛이 강할수록 더욱 천연한 단풍색이 만들어진다.

어디선가 나타난 돌풍에 사정없이 하늘로 솟구쳤던 낙엽이 차창으로 떨어져 내리면 마치 고즈넉한 유럽 도시를 배회하는 여행자가 된 듯 황홀하다.

도시의 아름다움은 나무들로 공통적이고 일상적인 것이 된다. 런던의 플라타너스, 칠레 산티아고의 남양소나무(아라우카리아), 파리의 마로니에야 도시 여행자들의 상식이지만, 베이징 시내 곳곳에 늘어선 거대한 회화나무 가로수들은 여행자를 당혹케 한다. 오래된 나무들은 오늘의 중국이 아닌 위대했던 역사 속의 중국을 만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도시의 건축물은 취향도 있고 유행도 있고 시효도 있지만 도시의 나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 자체가 되고 상징이 되고 도시가 된다.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강력한 도시의 구조물, 바로 오래된 나무들이다.

도로변의 가로수든 공원의 조경수든 도시의 나무는 미적 가치 뿐 아니라 다양한 기능을 가진다. 가로수는 인도와 차도를 구분해서 보행자를 보호한다. 도시의 녹지는 시민들에게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고 도시 생물들을 품어주는 자연의 대리모가 된다. 주차장 대신 테마 공원으로 꾸며진 아파트의 실외 공간은 경우에 따라 아파트의 가치를 높이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도시의 나무들은 도시의 공기를 정화하고 도심 기온을 조절하는 등의 환경 조절자로서의 기능이 중요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도시의 나무들은 우리가 숨기고 싶어하는 우리의 부끄러운 곳을 가려주는 훌륭한 차폐장치가 된다. 도시의 온갖 소음은 물론이고, 흉물스런 시설물에서 훼손된 자연에 이르기까지 도시가 가지는 불쾌한 풍경들을 훌륭하게 가려준다. 나아가 날카로운 직선을 둥글게 다듬어 주고 모난 부분을 감싸 주고, 빈 곳들 채워 준다. 나무는 자라면서 건물과 하나가 되면서 다정한 풍경이 된다. 녹음시절에서 단풍철 동안 모든 도시는 오래된 명품 도시처럼 근사하다.

그러나 단풍잎이 낙엽으로 떨어져 내리면 나무의 빈 가지가 드러나고 그 사이로 숨어 있던 도시의 맨 얼굴이 드러난다. 화단에 박혀 있던 담배꽁초에서부터 무질서하게 읽혀 있는 전선과 간판들, 가건물들, 부서진 건물과 낙서 지저분한 벽, 나무에 감겨 있는 장식용 전구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이 숨길 곳 없이 드러나면 도시의 풍경은 민망하게 변한다.

도시에서 가리고 싶은 것이 풍경만이라면 마음은 그래도 내년을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다. 봄이면 나무는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테니까. 겨울은 나무에게만 혹독하지 않다. 나무의 빈 가지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도시의 맨 얼굴과 더불어 추운 겨울에 삶을 고스란히 노출시켜야 하는 어려운 삶들이 생각난다.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힘들다. 계절의 축복에 가려졌던 어려운 삶들은 겨울 추위에 얼어터진다. 가을은 개인에게 삶을 직시하고 진실을 보게 하는 사색을 가져다 줌에 틀림없다. 단풍은 혹독한 겨울의 전주곡이다. 사람들의 사랑과 온정이 장작불처럼 타오를 때가 온 것이다.

이왕에 혹독한 진실 하나 더. 앞으로 녹음 짙은 나무를 보기 위해서는 최소 5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나무는 우리의 마음 속에 늘 푸른 생명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일 년 중 반 정도가 우리가 말하는 쓸쓸한 겨울나무인 것이다.

차윤정 생태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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