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두 다리 쭉 뻗고 편히 잠을 잔다는 것이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 막다른 골목까지 왔는데 며칠쯤 잠을 못 자는 것도 대수는 아니다.
2승2패로 맞선 조범현(49) KIA 감독과 김성근(67) SK 감독은 한국시리즈 5차전을 하루 앞둔 21일 숙소에서 밤잠을 설쳤다. 조 감독은 연방 담배를 물었고, 김 감독은 냉수를 들이켰다. 한국시리즈 5차전은 22일 오후 6시 잠실구장에서 벌어진다. 선발투수는 로페즈(KIA)와 카도쿠라(SK).
6년 전의 악몽
조 감독은 감독 첫해였던 2003년 SK를 한국시리즈에 진출시켰다. SK는 3차전까지 2승1패로 앞서며 창단 첫 우승을 눈앞에 두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4경기에서 1승3패로 무너지는 바람에 2등에 만족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10월21일 홈 4차전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조 감독은 4차전 선발로 '에이스' 이승호 대신 김영수를 냈고 팀은 3-9로 대패했다. 정민태와의 맞대결을 피하기 위해 '아웃복싱'을 한 게 결과적으로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
조 감독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당초 로페즈 윤석민 구톰슨 3명만으로 선발 마운드를 꾸리고 왼손 양현종을 중간계투로 쓸 요량이었다. 하지만 조 감독은 장기전을 대비해 양현종을 4차전 선발투수로 투입했고, 팀은 3-4로 패했다. 경기 후 한 해설위원은 "KIA 벤치의 지나친 안전위주의 경기운영이 SK의 분위기를 되살려줬다"고 지적했다.
7년 전의 악몽
김 감독은 2년 전 최초로 2연패 후 4연승으로 우승을 일궜다. 지난해에도 김 감독은 첫판을 내줬지만 이후 4연승으로 우승컵을 품었다. 하지만 올핸 2007년이나 지난해와는 많이 다르다. 어쩌면 7년 전 LG와 비슷한 상황인지도 모른다.
김 감독은 LG 사령탑이었던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큰 좌절을 맛봤다. LG는 '최강' 삼성을 맞아 5차전까지 2승3패로 선전했다. 6차전에서도 9회초까지 9-6으로 앞섰다. 그러나 믿었던 불펜(이상훈 최원호)이 9회말 이승엽(3점)과 마해영(1점)에게 잇달아 홈런을 얻어맞는 바람에 9-10으로 역전패했다.
현재 SK 마운드에는 '부동의 에이스' 김광현과 불펜의 핵 전병두가 없다. 특히 전병두가 빠진 불펜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김 감독이 3,4차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웃지 못했던 이유다. 한 전문가는 "SK가 분위기를 빼앗았음에도 지친 불펜 때문에 남은 시리즈를 낙관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최경호 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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