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 9일 싱가포르의 한 호텔에서 박지원과 송호경이 극비리에 만났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추진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송호경은 북 통일전선부 산하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으로 부총리급 실세였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청와대 공보수석에 이어 문화관광부장관 직을 맡은 박지원은 DJ의 신임이 돈독했다. 남북관계라인이 아닌 그가 나선 것은 비밀협상 위장에 용이했고, 무엇보다 북측이 DJ의 측근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두 차례 더 회담한 뒤 4월 8일 분단 후 첫 남북정상회담 일정에 합의한 공동발표문에 서명했다.
■ 박지원-송호경 비밀협상 채널이 열리는 데는 현대그룹과 재일동포계 대북사업가인 요시다 다케시의 역할이 컸다. 북송 재일동포의 2세인 요시다는 정주영씨의 소떼 방북 등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에 깊이 개입했던 인물. 현대그룹의 정몽헌 이익치 회장과 요시다는 싱가포르 비밀회담에 앞서 남북 특사일행을 직접 소개시킬 정도로 깊숙이 개입했다. 현대가 대북사업을 위해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적극적으로 작용한 정황 중의 하나다. 정상회담 대가로 제공됐다는 5억 달러도 현대의 대북사업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 노무현 정부 말기에 성사된 2차 남북정상회담은 1차 정상회담 때에 비해서는 훨씬 투명하게 추진됐다.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이 비밀리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평양을 방문했지만 남북의 공식 라인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 때 김 원장의 상대였던 김양건 통전부장이 최근 비공개리에 베이징을 방문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만나 남북정상회담 추진 문제를 협의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 의원과 정부당국이 사실무근이라고 강력 부인해 해프닝으로 끝난 형국이지만 여진이 만만치 않다.
■ 그 직전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이 대통령을 초청했다는 미 국방부 당국자의 브리핑으로 소동이 있었다. 청와대와 백악관이 강력 부인해 수습되긴 했지만 이 역시 뒷맛을 남겼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느냐며 남북간 모종의 비밀접촉 가능성에 주목한다. 나아지는 듯 하다가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서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고위급 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음습한 비밀협상이 아니고 투명하게만 추진된다면 부정적으로 볼 이유도 없다. 천둥이 잦으니 조만간 비가 내릴지도 모르겠다.
이계성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