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남편, 엄마를 잃은 아이들. '굿바이 그레이스'는 남은 가족들의 이야기다.
그레이스는 가고 없다. 직업군인으로 이라크에 파병됐다가 전사한 것이다. 너무나 갑작스런 소식에 남편 스탠리(존 쿠삭)는 그저 멍할 뿐 눈물조차 안 난다. 학교에서 돌아온 귀여운 두 딸에게 엄마의 죽음을 차마 알리지 못한다. 그는 딸들을 데리고 무작정 여행을 떠난다.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놀이공원으로 가는 동안, 사춘기에 접어든 큰 딸(셀란 오키프)은 아빠가 뭔가 숨기고 있음을 눈치채지만, 철부지 둘째(그레시 베드나직)는 신이 나서 떠들 뿐이다.
이 영화는 느리고 잔잔하다. 슬픔은 내내 조용히 흐른다. 스탠리는 힘든 내색도 못한다. 그가 슬픔을 견디는 방법은 집에 전화를 걸어 자동응답기에서 흘러나오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홀로 말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잘 지내고 있고 여행 중"이라고. 조숙하고 예민한 큰 딸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불안해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는 천진난만하기만 해서 보는 이를 마음 아프게 한다.
존 쿠삭과 두 아역 배우는 이 영화에서 호연을 보여준다. 극적인 사건 없이 담담하게 펼쳐지는 드라마가 지루하지 않은 것은 이들의 연기 덕분이다.
존 쿠삭은 "이라크에서의 사망자 수를 숨기기 위해 전몰 병사들을 짐짝처럼 시신용 가방에 담아 오는 부시 정부에 분노해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총성도 포연도 없는 이 영화에서 극중 스탠리는 이라크 파병의 정당성을 믿는 보수주의자이지만, 그와 두 딸의 상처는 자연스럽게 반전을 생각케 한다. 바로 이런 '미지근한' 태도 때문에 2007년 미국 개봉 당시 "이라크 파병 문제를 신파로 그려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같은 해 선댄스영화제에서는 관객상과 각본상을 받았다. 미국 신인 감독 제임스 C 스트로즈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데뷔작이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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