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주인공은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라고 말한다. 물론 큰 틀의 국제정치 무대에서 이들이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베를린 장벽 붕괴를 실제로 촉발한 진짜 주역은 기자들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 보도했다. 당시 동독 공산당(SED) 정치국원이자 선전담당 비서인 귄터 샤보브스키로부터 "(동서독간 통행 자유화가) 즉시 발효된다"라는 말 실수를 이끌어낸 사람들은 바로 기자들이기 때문이다.
20년 전 동독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동독인들이 주변국을 우회해 서독으로 집단 망명하면서 동독 정부가 위기에 빠졌던 11월 9일. 동독 공산당은 여행제한을 완화하기로 결정했지만 정작 이 새 방침을 발표해야 하는 샤보브스키는 회의에 불참, 구체적 내용을 몰랐다. 질문을 쏟아내던 기자들이 드디어 "언제부터 발효하냐"고 다그치자 샤보브스키는 머뭇거리다가 "즉시 발효된다"고 대답했다.
그 즉시 이탈리아 특파원 리카르도 에르만은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뉴스를 세계최초로 본국에 송고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독인들은 삼삼오오 베를린 장벽으로 향했고 몇 시간 후 40년 넘게 버티던 장벽이 무너져 내렸다. 에르만은 2008년 독일 최고명예인 '연방 공적 십자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독일 신문기자 페터 브링크만은 "핵심적 질문인 '언제부터'는 내가 물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그는 동베를린 찰리검문소로 달려가 경비원들을 설득, 문을 열도록 설득한 것도 자신이라고 한다. 장벽 붕괴의 주역 논쟁이 벌어진 셈인데 WSJ은 당시 기자회견 테이프를 검토했으나 가려낼 수 없었다고 전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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