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청이 20일 영국 성공회 사제와 신자의 가톨릭 개종을 더욱 쉽게 하는 내용의 새 교회법을 발표, 한 뿌리에서 갈라진 두 종교의 화합 분위기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주목되고 있다. 가톨릭과 성공회는 16세기 영국 국왕 헨리 8세의 이혼 문제로 475년 동안 서로 등을 돌렸으며 20세기 들어 재결합 논의가 계속돼 왔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로마 교황청 신앙교리성 수장인 윌리엄 조지프 레바다 추기경은 이날바티칸시티에서 "가톨릭교회와 완전한 일체를 이루려 하는 세계의 모든 성공회 성직자와 신도의 요청에 응답한다"며 "새 교회법에 따라 성공회 신자들도 기존 성공회의 영적, 전례적 전통을 유지하면서 가톨릭과 하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새 교회법에 따르면 성공회의 결혼한 사제(주교는 제외)가 가톨릭으로 돌아오더라도 결혼생활과 성직자 수행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성공회 신도가 가톨릭 개종을 선언하더라도 성공회 방식의 미사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가톨릭 교회에서 결혼한 사제가 성공회와 가톨릭 형식이 섞인 '하이브리드'스타일의 미사를 집전하는 풍경도 생길 전망이다.
교황청의 이 같은 조치는 일단 성공회를 포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사제와 동성애자 주교를 인정하는 등 성공회의 진보적 행보에 비판적인 보수 성공회 신도들을 가톨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성공회 존 브로드허스트 풀햄 주교는 이날 더 타임스에 "1,000여 명의 사제가 가톨릭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이번 조치로 수많은 성공회 신자들이 가톨릭으로 돌아와 두 종교의 재결합이 촉진될 것이란 관측과 함께, 수 십 년간 두 종교가 계속해온 통합 논의에 찬물을 끼얹을 것(AP통신)이란 전망이 외신들 사이에 엇갈리고 있다. 새 교회법이 두 종교의 화합분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한편 새 교회법에 대해 불과 수시간 전에 통보받은 성공회의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성공회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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