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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연극 '라디오, 잠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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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연극 '라디오, 잠시 길을 잃다'

입력
2009.10.20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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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극단 드라마팩토리의 모노 드라마 '라디오, 잠시 길을 잃다'는 지근거리에서 객석을 흡인하는 소극장 연극의 미덕을 고스란히 구현해야 할 운명이다. 밀양연극제에서 연출가 이윤택씨의 주목을 받아 서울 나들이까지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서울의 연극이 갖지 못한 색다른 연극적 미덕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뺏고 있다. 모노 드라마란 양식이 객석을 흡인하는 배우의 기량에 많은 것을 기대기는 하지만, 그에 앞서 이 연극 특유의 즉물성은 객석과 무매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직결된다.

우선 원작자(박민지)가 "공연 시점에 어울리는 라디오 사연을 채워줄 것"을 요청한다. 실제로 극중의 방송 대본 원고는 1~2주 단위로 개작돼 왔다. 이 시대 청춘 갑남을녀의 사연들로 뼈대가 채워질 수밖에 없는 이 연극은 지금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 관객들과 교감에서도 성공하고 있다. 서울 사람보다 표준말을 더 잘 구사하는 부산 토박이 배우 김준영(31)이 최대의 공신임은 물론이다. 그의 너스레에 정신을 놓고 있으면 관객은 어느덧 이만치 무대로 끌려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극이 정확히 언제 시작하는지 알 수 없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처럼 라디오에 관한 팝송들이 몇 곡 흘러 나오면, 김준영은 너스레 떨면서 호들갑스럽게 객석과 농 주고 받으며 분위기를 푸는데 바로 옛날 다방 DJ 모습이 아닌가. 요즘 공연장의 필수가 돼 버린, "핸드폰 꺼 달라"는 멘트가 굳이 필요 없다.

이 무대는 극사실주의에 많은 것을 기댄다. 일상과 무대를 구분하지 않는 그 같은 연극적 전략은 각종 매체에 인간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작금의 연극 풍토에 대한 반격이다. 거기에 '88만원 세대' '댓글' '김제동, 손석희, 윤도현 방송 하차' 등 현재적 풍경도 언급되니 무대는 현재의 거울도 된다.

결국 드러나는 것은 배우다. 부산에서 잔뼈가 굵은 김준영에게는 연기와 실제의 구분이 녹록하지 않다. 객석과 농을 주고 받다 일순 코앞의 관객이 사라진 듯 천연덕스레 연기해 나간다. 무대 위 상황이 대본에 있는 것인지 즉흥 연기인지는 공연이 끝난 후 명확해진다.

김준영이 극장을 떠나는 관객에게 "아까 죄송했다"며 인사하면 관객은 크게 웃을 뿐이다. 아까 그가 얼굴이 번들번들해 질 정도로 땀을 흘리며 열연을 펼치던 모습을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11월 1일까지 게릴라 극장.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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