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앞에 20대 젊은이 30여명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고층 아파트 건립반대!" "계획 없는 재개발 반대!" 이들은 최근 구청 심의를 통과하고 서울시 심의를 앞두고 있는 '동대문구 제기5구역 개발기본계획안'에 반대하는 시위대였다. 이제 서울 도심 풍경의 하나가 된 흔하디 흔한 재개발 반대 시위건만, 집회 주인공들만은 사뭇 달랐다.
재개발지역 세입자들이 아니라 고려대 학생들이었다. 이들에게 재개발 문제는 등록금만큼이나 급박한 발등의 불이 됐다. 고려대 정문 앞 자취ㆍ하숙촌 일대에 35층짜리 고층 아파트 설립안이 통과되면 지방 자취생들은 모두 학교 앞에서 쫓겨날 판이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대학가 곳곳에서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지방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하숙집이나 자취방을 구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개발로 당장 공급이 급감하다 보니 가격도 급등해 상당수 학생들이 외곽으로 쫓겨나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세입자들과 어깨를 걸고 재개발 반대에 머리띠를 두르고 나섰다.
고려대의 지방 학생들이 풍전등화 상태라면, 중앙대 한양대 한국외대 성신여대 등의 학생들은 이미 초토화됐다. 학교 주변이 각각 흑석, 왕십리, 이문ㆍ휘경, 길음ㆍ미아 뉴타운 개발 지역에 포함됐기 때문.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들 지역 하숙비는 1~2년 전에 비해 월 10만원에서 많게는 25만원 가량 올랐다.
1년치로 치면 하숙비만 최대 250만원 가량 부담이 더 생겨 600~700만원대에 달한다. 중앙대 인근 흑석동 하숙촌의 경우 6.6㎡(2평) 기준 월 30만~40만원이던 하숙비가 재개발사업 인가가 난 2007년 이후 15~25만원 가량 올라 월 60만원에 이른다. 한양대 인근 행당동 하숙비도 6.6㎡ 기준 하숙비가 지난해 45~55만원에서 5만원 가량 올랐다.
한양대 인근에서 하숙을 하다 방값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최근 동대문구 회기동으로 이사했다는 한양대 학생 김모(23)씨는 "학교 앞에서 걸어 다니다가 이젠 버스나 전철로 가야 하는데 교통비 부담까지 생겼다"며 "그 동안 학생들이 '한럼'(한양대슬럼)이라 부르며 회피해왔던 행당동 굴다리 지역의 낡은 집들로도 많이 옮겨갔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지만 대학 측은 오히려 고가의 민자기숙사를 짓고 있어 지방 학생들을 궁지로 몰고 있다. 2006년 건국대를 시작으로 서강대, 고려대, 경희대 등 서울 지역 10여개 대학이 민자기숙사를 지었거나 신축 중이다.
서강대 민자기숙사의 경우 기숙사비가 올해 1학기 2인실 6개월 기준 272만원(식비 포함)에 이른다. 방학기간 학생들이 방을 비우는 것을 감안하면 월 40만~50만원선인 주변 하숙비 보다 높은 것이다.
대학 관계자는 "큰 돈이 드는 기숙사 신축에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민간 투자를 받는데, 이들에게 일정수익을 보장해줘야 해 기숙사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숙사 신축으로 기존 기숙사생들까지 하숙방을 찾는 통에 사정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충남 천안이 고향인 숙명여대 학생 김모(26)씨는 "기숙사에서 살던 학생들이 대거 집을 구하는 바람에 방값이 너무 올랐다"며 "결국 강북구 수유동으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학가 인근 국유지와 학교부지 등에 지방학생들이 머물 수 있는 '학생복지주택'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관계 법령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일러야 내후년은 돼야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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