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1879~1910) 의사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만주 하얼빈에서 사살한 지 26일로 꼭 100년이 된다. 이 사건은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는 아시아 민족주의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중국의 국부 쑨원(1866~1925)은 당시 안 의사의 의거에 '공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치나니, 백세의 삶은 아니나 죽어서 천추에 빛내리…'라는 제사를 써서 바쳤다. 100주년을 맞아 안 의사를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 학술대회 '동양평화론은 21세기에도 유효한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22일 고려대에서 안중근의 사상과 민족운동사적 역할, 현대적 의미 등을 짚는 '안중근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발표될 논문 가운데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동아시아경제공동체 구상 등 21세기 국제적 변화에 벼리로 작용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춘 것들이 눈길을 끈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현재의 글로벌 경제위기는 강대국 중심의 패권과,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가 지구촌의 안정에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아시아에서 통합과 번영의 질서는 20세기 질서의 강자가 아니라 상대적 약자였던 한국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며 동양평화론의 현재적 가능성에 주목한다.
문우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안중근이 이미 100년 전 아시아은행을 설립해 공동 통화발행 등 금융협력을 주장했던 점을 상기시킨다. 그는 "동양평화론이 칸트의 영구평화론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재정금융의 측면 등 평화를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적 가치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조홍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그리고 현재 동아시아 통합 논의를 유럽통합의 사례에 비춰 고찰한다. 조 교수는 "안중근이 20세기 초에 제안한 구상은 20세기 중후반에 유럽에서 진행된 통합의 현실과 무척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다"며 "유럽의 사례와 동양평화론이 조우하는 문제의식은 내부적 연대를 통한 외부 위협의 방어"라고 파악한다.
■ 글씨와 사진으로 보는 안중근의 마지막 5개월
안중근의 유묵(遺墨)과 원판 사진을 모은 전시 '안중근_독립을 넘어 평화로'가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개막해 2010년 1월 24일까지 이어진다. 국내 박물관과 개인 소장자를 비롯해 일본과 중국, 미국에서 모은 자료들로,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던 생애 마지막 5개월의 흔적들이다.
'國家安危勞心焦思(국가안위노심초사)' '獨立(독립)' 등 전시에 나온 글씨 34점에는, 약지 손가락의 단지 흔적이 있는 왼손을 눌러 찍은 안 의사의 장인(掌印)이 뚜렷하다. 논어 경구인 '不仁者不可以久處約(불인자불가이구처약ㆍ어질지 않은 자는 곤궁에 처했을 때 오래 견디지 못한다)'을 쓴 유묵에는 힘든 옥중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으며 '天堂之福永遠之樂(천당지복영원지락ㆍ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에서는 죽음을 앞두고도 초연한 안중근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안중근의 글씨에 대해 "엄정 단아한 해서와 행서가 주가 되는데, 침착하고 강건한 기질이 그대로 녹아있어 내용은 물론 조형적으로도 안중근 그 자체"라고 말했다.
사진 자료 중에는 체포 직후 임시로 수형 리본을 단 초상 사진이 일본 류코쿠대학에서 들어왔고, 이토 히로부미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 승강장에 내려 안중근에게 사살당하기 직전의 순간을 담은 사진도 공개된다. 의거 다음날인 1909년 10월 27일 하얼빈에서 일본 경찰에 의해 촬영된 안중근의 부인과 아들의 사진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안중근은 의거 전 가족들을 불렀으나, 이들이 의거 다음날 도착하는 바람에 결국 마지막까지 만나지 못했다.
■ 무대에서 만나는 안중근
안중근의 삶을 담은 뮤지컬 '영웅'은 26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막이 오른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연출자 윤호진 에이콤 대표가 내놓은 창작 뮤지컬로 37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이다. 안중근의 의거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안중근을 사랑하는 중국 여인 링링과 명성황후의 궁녀 설희 등 가상 인물을 만들어 드라마적 요소를 더했다. 안중근 역은 류정한, 정성화씨가 나눠 맡는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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