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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막걸리의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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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막걸리의 자부심

입력
2009.10.20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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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방학을 맞아 시골 외갓집에 가면 늘 해야 하는 심부름이 있었다. 동네에서 꽤나 떨어진 삼거리에 가서 외할아버지께서 드실 막걸리를 받아오는 일이다. 남은 돈으로 사탕 몇 알 사먹는 재미로 심부름을 했는데,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꼬불꼬불한 논두렁 길을 걸어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테다. 힘들면 논두렁에 주저 않아 주전자 뚜껑에 막걸리를 부어 한잔씩 마셔 보기도 했다. 백수를 누린 뒤 고인이 되신 외할아버지가 막걸리를 즐긴 이유는 위장병 때문이라고 했다. 젊은 시절 위산과다로 속이 쓰린 일이 많았던 외할아버지는 당시 한의사의 처방을 받아 막걸리를 치료제로 쓰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약이 없던 시절 막걸리가 '암포젤엠'과 유사한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알칼리성 음료로 위산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막걸리 열풍이 불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막걸리를 먹는 횟수가 잦아졌다. 소주와 사이다를 섞어 마시는 '막소사'도 주요 폭탄주 대열에 들어섰다. 하늘에서도 막걸리다. 아시아나항공은 한일 노선에서 막걸리를 제공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20일 막걸리의 천연효모와 유산균을 사용해 만든 '막걸리 쌀빵'을 개발해 국제선에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외국에서 온 귀빈에게 막걸리를 대접하고, 각종 공식행사에서 막걸리가 공식 건배주로 자리를 잡는 등 막걸리의 위상이 높아졌다. 급기야 막걸리 연구소도 탄생했다. 신라대학은 막걸리의 효능과 제조기술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막걸리 세계화 연구소'를 개설했다.

막걸리 '전도사'인 홍석우 중소기업청장에 따르면 막걸리는 배가 쉽게 부르기 때문에 과음을 할 염려가 적고 안주를 적게 먹게 돼 술 살이 찌지 않는다. 또 요구르트 수백병에 해당하는 유산균을 함유해 쾌변을 가능하게 해 준다. 실제 홍 청장은 막걸리를 즐겨 마신 후 콜레스테롤과 통풍을 유발하는 요산수치가 내려간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는 또 "친구 부인이 저녁에 밥 대신 막걸리를 마시는 다이어트로 체중을 엄청 줄인 것을 봤다"고 전했다. 식이섬유, 비타민BㆍC, 유산균, 효모 등이 풍부한 막걸리가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각광받는 것이다.

맥주ㆍ양주의 유입과 소주의 선전 등으로 막걸리의 소비량은 1990년대까지 꾸준히 줄었다. 막걸리가 새롭게 등장한 것은 역겨운 냄새와 숙취를 유발하는 성분을 걸러냈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막걸리의 올해 수출은 3,870톤, 312만9,000달러로 1998년 631톤, 61만 4,000달러에 비하면 5배이상 늘어났다. 이 중 90%가 일본으로 수출된다.

막걸리 열풍이 부는 이유가 뭘까에 대해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의외로 공통적인 결론에 다다른다. 막걸리의 품질이 좋아졌다는 것 외에도 한국이 이제 선진국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그저 외국 것이라면 사족을 못쓰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 것에 대한 진정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휴대폰이나 자동차처럼 이제는 우리도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부심이라고나 할까. 굳이 양주나 비싼 와인을 대접해야 체면이 서던 시절을 극복, 이제는 우리 것을 마음껏 자랑하고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막걸리 열풍이 쌀 농가를 살리고 국민을 건강하게 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조재우 산업부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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