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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모닥불을 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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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모닥불을 밟으며

입력
2009.10.20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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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을 밟으며 마음을 낮추고

그대는 새벽 강변을 떠나야 한다

떠돌면서 잠시 불을 쬐러온 사람들이

추위와 그리움으로 불을 쬘 때에

모닥불을 밟으며 꿈을 낮추고

그대는 새벽 강변을 떠나야 한다

모닥불에 내려서 타는 새벽이슬로

언제 다시 우리가 만날 수 있겠느냐

사랑과 어둠의 불씨 하나 얻기 위해

희망이 가난한 사람이 되기 위해

꺼져가는 모닥불을 다시 밟으며

언제 다시 우리가 재로 흩어지겠느냐

사람 사는 곳 어디에서나 잠시

모닥불을 피우면

따뜻해지는 것이 눈물만이 아닌 것을

타오르는 것이 어둠만이 아닌 것을

모닥불을 밟으며 이별하는 자여

우리가 가장 사랑할 때는 언제나

이별할 때가 아니었을까

바람이 분다

모닥불을 밟으며 강변에 안개가 흩어진다

꺼져가는 모닥불을 다시 밟으며

먼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사람들은 모두 꿈이 슬프다

● 느슨한 것이 좋다. 이렇게 슬근슬근 풀어내는 언어가 좋다. 치열한 삶의 시간을 이렇게 녹진하게 풀어내는 언어가 좋다. 이건 경지다. 한 인간이 모진 시간을 살아내고 살아내어, 이렇게 오롯하게 한 순간을 그려내는 것이 좋다. 사랑하자는 말이 좋다. 꺼져가는 불이 좋다. 그 불을 부드러운 발로 밟는 것을 바라보는 순간이 좋다. 부드러운 인정 뒤에 험악한 삶이 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다, 하면서 다시 사랑을 노래하는 순간이 귀하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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