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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기능이 미래다] 제1부 (2) 기능교육 현장, 더 이상 배울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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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기능이 미래다] 제1부 (2) 기능교육 현장, 더 이상 배울게 없다

입력
2009.10.20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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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공 교사가 패션 수업… "전문기술 습득 꿈도 못꿔요"

“전공도 안 했지, 현장 경험도 없지, 어떻게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겠어요. 솔직히 가르치는 저도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부산의 한 전문계 고등학교 화공ㆍ섬유과에서 패션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사 A씨.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는 패션의 ‘패’자도 공부한 적이 없는 ‘패션 문외한’이다. 2005년 화공ㆍ섬유를 모집 단위로 한 교사 충원 공고를 보고 이 학교에 지원한 그는 학교에 들어오고 나서야 자신이 얼마 전 그만둔 섬유 전공 교사의 빈 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학년 공통과목과 방사(紡絲) 과정은 화공 전공 교사들도 지도가 가능하지만 이 과정을 넘어 천 뽑기나 염색 등은 섬유 전공 교사가 아니면 맡기 어려워요. 전문성 없는 교사들 때문에 결국 학생들만 손해를 보게 되는 거죠.” 실제 학교의 전공과목 교사 6명 중 의류 및 섬유를 전공한 교사는 3명뿐이고, 나머지 3명의 교사들은 모두 화공 전공이다. 2000년 도입된 ‘중등교사 자격증 통합표시과목제’에 따라 교사 모집 단위가 광역화되면서 생긴 문제였다.

통합과목제가 비전문교사 허용

교사들의 전문성 부족과 부실한 교과 내용이 전문계고의 쇠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기능인력 양성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교사들의 전문성과 현장성 부족은 수 년째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지만, 인문계고 교육에 치중하고 있는 교육 당국은 여전히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7차 교육과정개편부터 시행된 ‘중등 교사자격증 통합표시과목제’는 전문적인 기술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의 의욕을 저하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전문계고 중 공업계 고등학교는 기계ㆍ금속, 화공ㆍ섬유, 전기ㆍ전자ㆍ통신 등 세부적인 전공 과목에 차이가 뚜렷한 분야까지 하나로 묶어서 교사를 충원하다 보니 비전공 교사들이 전문기술을 가르쳐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의 한 공고에서 섬유디자인을 전공하는 김모(17)양은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 새로 충원된 선생님들이 전혀 다른 전공자라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여건도 갖춰놓지 않은 채 밀어붙이고 있는 특성화고 지정은 이런 혼란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전문계고 교사 김모씨는 학교가 방송 특성화고로 지정 받은 이후 걱정으로 밤잠을 설친다. 내년부터 전공 과목들이 전면적으로 바뀌지만 전공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건설정보과로 이름이 바뀐 토목과는 내년부터 방송무대디자인과로 완전히 틀이 바뀌는데도 방송 관련 전공자나 자격증을 갖고 있는 교사는 한 명도 없는 실정. 학교 측은 기존 전공에 억지로 방송 관련 이름을 붙여 새로운 전공 과목들을 홍보하고 있지만, 막상 이를 책임져야 할 교사들은 지난 여름방학부터 대학 연극영화과에서 단기 연수를 받은 것이 전부다. 김씨는 “전문교사를 확보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진행된 특성화고 전환으로 인해 학생들만 피해를 입게 됐다”고 답답해 했다.

기술 없는 기술인력 양산

전문계고 교육의 이런 문제점들은 결국 산업 현장의 볼멘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올 초 서울의 한 공고 자동차과를 졸업하고 정비 관련 회사에 취업한 이모(19)씨는 1년이 지나도록 초보적인 수준의 단순 반복적인 업무밖에 맡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기술과 현장의 기술력 사이의 엄청난 간극 때문이다. 이씨는“자동차 수리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어 학교에서 배운 기술만으로 한계가 있다”며 “고등학교 때 배운 걸로는 중요한 업무는 엄두도 못 낼 형편”이라고 아쉬워했다.

기업들도 전문계고 졸업생의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는 마찬가지. 경기도 광주에서 직원 20명을 두고 전자부품 회사를 운영하는 이모 사장은 숙련 인력 부족이 항상 고민이다. 그동안 단순 반복적인 일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맡기고 숙련 기술은 전문계고 졸업생들의 도움을 받아왔는데, 이들의 기술력이 갈수록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회사를 처음 운영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관련 전공을 한 고졸 출신 직원들은 짧은 적응 기간만 거치면 곧 바로 정밀한 작업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력이 좋았다”면서“최근에는 회사에 오려는 전문계고 졸업생도 드물지만 막상 들어와도 기초적인 전문 기술이 부족해 단순 반복적인 업무만 담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 기능올림픽 입상 못하면 '인생 낙오'

“3년 내내 대회 하나만 준비했는데 메달 못 따면 끝장이죠.”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입상자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포상과 달리 비입상자의 현실은 가혹하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수업도 듣지 않고 기술 훈련에만 매진해온 학생들에겐 대안도 없이 ‘마이스터’에 도전한 대가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내 및 국제기능대회에 출전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전문계고 기능반 출신들이다. 기능반에는 숙련기술인으로 미리 진로를 정한 학생들이 자진해서 들어오는데, 종목당 보통 두세 명 수준. 1학년들은 교과과정을 따라가며 방과 후에만 훈련을 받지만, 2ㆍ3학년 때는 수업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은 채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훈련에만 매달린다. 주말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3년간 준비한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하면 급하게 진로수정이 이뤄진다. 유일한 대안은 전문계고와 연계교육을 실시하는 전문대를 찾아 진학하는 것. 하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다. 기능반 지도를 맡고 있는 인천기계공고 이기재 교사는 “진학을 해도 갑자기 안 하던 공부를 하느라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많고, 대학생활에 적응을 못해 중도 포기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며 안타까워했다.

3년 내내 동일 기술을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국제대회에서 입상해 대기업 등에 취직한 사람들도 정밀성은 뛰어난 반면 창의성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정성훈 기능경기팀장은 “기업체나 취업한 선수 모두로부터 그런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기업들이 제공하는 교육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는 등 본인이 자기계발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 산·학·관 협력이 해답

전문계 고등학교가 본래 취지대로 기능인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산ㆍ학ㆍ관의 협력이 절실하다. 전문계고가 갖추지 못한 전문성과 현장경험을 산업현장으로부터 직접 전수 받음으로써 낙후된 교육과정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충북 음성에 있는 충북반도체고등학교는 이런 산ㆍ학ㆍ관 협력의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금왕공고로 불렸던 이 학교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다른 전문계고처럼 학생 수 감소와 취업률 저하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2005년 반도체 분야의 인력양성에 주력하기 시작한 이후 짧은 시간에 전문계고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성장했다. 하이닉스반도체와 동부하이텍 등 지역 반도체 회사들로부터 고가의 실습 기자재를 지원 받은 것을 비롯해 교원 연수와 산학겸임교사제 등에서도 큰 도움을 받은 덕분이다.

이 학교의 송길용 교사는 “전문가 36명으로 구성된 반도체 인력양성 위원회를 통해 산학관 협력은 물론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의견을 교류하고 이를 실제 반영하고 있다”며 “실제 맞춤형 기능인으로 교육 받은 학생들은 취업 현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산ㆍ학ㆍ관 협력을 전문계고 전반으로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지식경제부 산하의 섹터 카운슬(Sector Counsilㆍ산업별 인적자원개발협의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5년 산업계 인력수급의 양적, 질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섹터카운슬은 현재 기계, 전자 등 12개 분야 협의체가 구성돼 있으나, 현재 그 활동이 미미한 상태다. 특히 전문계고와의 교류는 전혀 없어 이런 협의체를 잘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전문계고의 산ㆍ학ㆍ관 협력이 활성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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