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도 안 된 쌍둥이가 젖을 달라고 동시에 우는데, 어떻게 할 지 모르겠어요.” “쌍둥이는 태아보험에 가입이 안되나요?” “예비 쌍둥이 엄마인데요, 둥이들 혼자 키우는 것은 무리인가요?”
인터넷 쌍둥이 육아 카페의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을 훑어보던 김수현(33)씨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흘렀다. 쌍둥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초보ㆍ예비 엄마들을 보면서 5년 전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김씨가 2004년 11월 쌍둥이 형제 정우ㆍ범우(4)를 낳았을 때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에 홀로 버려진 것 같았다. 쌍둥이 육아정보는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서도 구하기 힘들었고 집안 어른들마저도 손사래를 쳤다.
답답한 마음에 김씨는 인터넷 카페 ‘쌍지뭘’(쌍둥이는 지금 뭘할까의 약자)을 만들었다. 쌍둥이 키우는 엄마들끼리 서로 고충을 얘기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2005년 3월 개설 당시 고작 3명이었던 회원이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 지금은 1,000명을 넘었고, 서로 “형부”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가깝게 지내 가족 같은 모임이 됐다. 쌍둥이 육아 정보에 목 말라 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요즘의 쌍둥이 엄마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아진 셈. 옛 생각에 잠겼던 김씨가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마다 답변을 써 올렸다. “둘이 동시에 젖 달라고 울면요, 엄마가 먼저 책상다리를 하고 양 허벅지 옆에 베개를 놓아두세요. 그 다음 쌍둥이를 머리를 맞대게 눕히는데, 아이들은 엄마 허벅지를 베고 몸은 베게 위에 놓이도록. 이어 양 허벅지를 살짝 들고, 상체를 조금 숙이시면 동시에 젖을 먹일 수 있어요. 15분 정도 하면 다리에 쥐가 날 거예요. 그래도 어떡해요? 내 새끼들 먹이는 건데.”
최근 쌍둥이 출산이 크게 늘어나면서 쌍둥이 가족들만의 ‘둥이 문화’가 자리를 잡고 있다. 덩달아 쌍둥이들을 겨냥한 각종 상품 시장도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국내 저출산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쌍둥이 출산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도 63만4,501명이던 국내 신생아 수는 점차 줄어 지난해 46만5,892명을 기록한 반면, 쌍둥이(다태아 포함) 신생아 수는 2000년 5,146명에서 지난해 6,289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전체 출생아 중 쌍둥이가 차지하는 비율도 2000년 0.81%였으나 매년 꾸준히 늘어 지난해는 1.35%를 기록했다.
쌍둥이 출산 증가는 직접적으로는 불임부부의 인공수정이 늘었기 때문이다. 황한성 건국대 산부인과 교수는 “자연임신에 의한 쌍둥이 출산은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인공수정 출산은 최근 10년 사이 2배 정도로 늘었다”며 “인공수정은 2~4개의 수정란을 만들어 착상하기 때문에 쌍둥이가 생길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공수정 증가가 취업난 등으로 결혼 연령이 갈수록 늦어지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쌍둥이 증가도 저출산 현실의 한 단면인 셈이다.
늘어난 쌍둥이 엄마들이 서로 정보를 교류하는 통로는 역시 인터넷. ‘쌍지뭘’ 외에 ’쌍둥이 엄마들은 다 모여요’란 카페는 회원수가 3만명이 넘는다. 외출 한 번 하려 해도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엄마들에겐 인터넷 카페가 가장 큰 의지처다. 김씨는 “회원끼리 옷가지 등을 서로 물려주는 건 당연하고, 다른 엄마들이 모르는 고충을 수시로 얘기해 서로 도와준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카페 회원 열 아홉 가족이 경기 양평으로 단체 여름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90명 가까운 인원이 함께 움직이다 보니 민박집을 통째 빌려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쌍둥이들끼리 모이다 보니 아이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즐거워했다고 한다.
쌍둥이 가정을 타깃으로 한 맞춤시장도 발빠르게 등장했다. 지난 8월 문을 연 쌍둥이 육아 용품 전문 쇼핑몰 트윈스데이(www.twinsday.co.kr)는 쌍둥이 유모차 등 전용상품 외에도 장난감, 옷가지 등을 ‘1+1’ 형태의 패키지로 묶어 할인해주는 방식으로 쌍둥이 가족들을 유혹하고 있다. 허남훈(31) 사장은 “올 여름에는 두 아이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물놀이 용품인 쌍둥이 튜브가 크게 유행했다”며 “쌍둥이 상품시장이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성장속도는 매우 빠른 편”이라고 말했다.
쌍둥이가 조산이나 미숙아 확률이 높아 보험 가입에 난색을 보이던 보험사들도 부족하나마 쌍둥이 보험상품을 내놓고 있다. 동양생명보험이 2007년 가장 먼저 쌍둥이 관련 보험상품을 출시했고, 한화손해보험도 올해 1월부터 쌍둥이 상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쌍둥이보험넷(www.twinins.net)을 운영중인 김태규(41)씨는 “쌍둥이들이 일반아에 비해 출산과 육아 등에서 위험부담이 있어 보험사들이 아직 적극적이지는 않다”며 “정부가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쌍둥이 출산ㆍ육아에 대한 보험료 지원 등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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