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과 호주국립대 아시아태평양대학 한국학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국제학술회의 '박정희와 그의 유산: 30년 후의 재검토'가 19일 연세대에서 열렸다. 박정희(1917~1979) 전 대통령의 30주기(26일)를 앞두고 현대사 속 그의 존재를 학문적으로 평가하는 자리였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국내외 학자 13명이 참석했다.
박정희의 리더십ㆍ권력 구축과 특징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박정희가 남한에서 권력을 구축하고 남ㆍ북 근대화 경쟁에서 이기게 된 원인을 김일성의 존재에서 찾았다. 한국전쟁과 이에서 비롯한 반공주의는 한국에서 "국가의 고갈되지 않는 정당성의 원천"이 됐다는 것이 박 교수의 분석이다. 또 전쟁은 좌익 가담 전력으로 군에서 축출된 박정희에게 복귀의 기회를 줬는데, 박 교수는 "김일성의 전쟁 시도는 자기를 패배시킬 조건과 사람을 미래 준비해두는 비극의 잉태였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김일성과 박정희가 모두 권위주의 체제를 갖췄지만, 이견과 반대의 존재 유무에서 승패가 갈렸다"고 분석했다. 유일지배체제인 북한과 달리 남한에서는 민주적 갈등과 도전이 있었는데, 이런 내부 경쟁이 북한을 제압하는 효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항일의 정당성을 지닌 김일성과 달리 친일 전력의 박정희가 경제성장이라는 실용적 업적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던 점, 미국의 영향권 내에서 순응과 저항을 되풀이했던 국제적 상황도 박정희의 리더십을 공고히 한 배경으로 지적됐다.
함재봉 미국 랜드연구소 수석정치학자는 이승만과 박정희로 이어지는 '국민형성 단계'의 리더십 특징에 주목했다. 그는 마키아벨리와 홉스, 푸코 등의 이론에 바탕해 "안정적인 근대 정치질서의 형성에 있어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은 없다"며 이 단계에서의 권력이 작동하는 과정에 대해 도덕적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권력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그것은 도덕적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국민형성에 있어 근본적인 역설과 아이러니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박정희식 권위주의는 필요했는가
그러나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경제개발 과정에서 권위주의 통제가 필요했다는 인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한국전쟁 때 이미 잠재적 반발 계층, 지주 엘리트 계층 등이 제거된 사실을 들며 개발주의와 권위주의가 결합할 필요성이 박정희의 등장 이전에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 비슷한 시기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개발을 이룬 나라들을 예로 들며 "박정희는 산업화를 위해 독재를 구축한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 정권 출범을 위해 한국을 산업화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960~70년대 '한국의 기적'은 박정희의 영도, 또는 권위주의와 시기적절한 개방의 결합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으며 여러 외부 요소들을 함께 고려해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류석춘 연세대 교수는 "정치적 정당성만으로 역사적 맥락까지 가늠하는 이분법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정희 시대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이 시대를 '강한 국가 대 약한 사회'로 보는 틀에서 탈피할 것을 제안했다. 류 교수는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를 배태하고 있는 사회도 국가의 전략을 받아들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며 박정희 시대를 강한 국가와 강한 사회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모범 사례로 규정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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