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도 한국경제가 나름대로 선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대한 여러 이유가 거론되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중요한 비결 중 하나로 제조업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기능인들의 손끝을 지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결국 이들의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사농공상에 얽매인 전통적인 가치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사회는 기능인을 보는 사회적 '천대'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고, 이들이 성장할 토양도 부실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일보는 우리 시대 숙련ㆍ전문인력들의 현 주소와 기능인 양성의 문제점을 외국 사례 등과 비교ㆍ점검하고, 각 기업의 대표 기능명장(마이스터)들의 성공 스토리를 소개하는 시리즈를 1년 동안 매주 1회씩 연재한다.
#1981년6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제26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옥내배선 직종 금메달을 딴 이상국(49)씨. 그는 김포공항에서 광화문까지 오픈카를 타고 지나면서 세상을 모두 얻은 것만 같았다. 전 국민의 열렬한 환영과 시가지를 지날 때 건물에서 흩날렸던 빨주노초 색종이는 평생토록 잊지 못할 장면으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2009년9월
이씨는 청와대로부터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대표선수단의 오찬에 참석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가 지도교수이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직종에서 메달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씨는 45명의 대표 선수 중 상을 받지 못한 6명 선수의 부모들도 초청받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곤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경쟁력 원천인 기능의 미래가 어두워지고 있다. 정부는 기능 강국을 넘어 기능 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기능인에 대한 대우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자연스레 기능직을 선택하는 젊은이도 줄어들고, 그 동안 축적된 기능 노하우와 제조업의 숙련 기술들이 사장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국일보가 14~16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월드리서치에 의뢰, 역대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금ㆍ은ㆍ동메달리스트(468명)를 대상으로 전화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시대 기능명장 10명중 8명은 기능의 미래를 걱정했다.
최근 기능직을 선택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250명 중 45.2%가 '매우 적다', 38.4%가 '적은 편'이라고 답한 것. 그 이유(중복응답)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엔 '일이 힘들어서'가 40.2%로 가장 컸고, '학벌 위주 사회여서'(11.0%),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 받아서'(11.0%), '기능인에 대한 대우가 부족해서'(10.5%) 등의 순으로 답변이 나왔다.
실제로 세계 최고 기술에도 불구하고 고졸 기능직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적이 있는 지에 대한 질문에 29.2%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젊은 우수 기능인 양성은 산업의 기초를 튼튼히 할 뿐 아니라 사교육과 청년 실업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우리 사회의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 제언이다. 사실 기능인력 부족난은 심각해져 가는데도 실업 또는 장기간 취업을 미루고 있는 청년층은 이미 113만명을 넘긴 상태이다.
고용이 전경련 노사정책팀장은 "이런 청년층을 숙련ㆍ전문인력으로 흡수할 수 있는 유인책을 강구하고, 나아가 경제계와 노동계가 힘을 합쳐 구인ㆍ구직 인력수급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한 총체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박일근기자 박선영기자 박상준기자 김광수기자 김성환기자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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