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가 최근 마호메트를 희화화한 만화를 두고 논란에 휩싸였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를 염려한 대학 출판부가 책의 출간에 앞서 문제 부분을 삭제하자 동문들이 "예일대는 지적인 겁쟁이"라고 항의한 것이다.
서구 문화권에서 마호메트를 비하하는 표현은 오래 전부터 나타나고 있다. 단테는 <신곡> 에서 마호메트가 사촌 알리와 함께 지옥에 떨어져 "분열과 이간질의 씨를 뿌린 죄"로 몸이 두 조각으로 난도질 당하는 벌을 받는다고 하였다. 신곡>
<신곡> 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1415년 지오반니 다 모데나가 그린 이탈리아 볼로냐의 산 피에트로 성당 벽화도 <신곡> 의 지옥편을 묘사한 것이다. 3년 전 볼로냐에 들렀을 때 성당에는 접근을 금지하는 붉은 테이프가 둘러쳐졌고 경찰이 입장객을 검문하고 있었다. 지옥에 갇힌 마호메트를 묘사한 성당의 벽화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목표가 되었던 것이다. 신곡> 신곡>
금방이라도 폭발물이 터질 것 같은 불안 때문에 벽화는 더 무섭게 보였다. 화면의 중앙에는 온 몸이 시커먼 털로 뒤 덮인 마왕 루시퍼가 사람들을 삼키고 있다. 탈진한 마호메트는 손을 뒤로 결박당한 채 마왕의 왼편 바위 위에 널브러졌다. 악마가 끝장을 내겠다는 듯 그의 머리를 뒤로 잡아당긴다.
벨기에 덴데르몬드의 성모 마리아 성당에 있는 17세기 목조각도 무슬림을 자극하고 있다. 코란을 꼭 껴안은 마호메트가 두 명의 천사에게 짓밟히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에는 덴마크 일간지가 폭탄 모양의 터번을 두른 마호메트를 만화로 게재했다가 테러 공포에 시달렸다.
마호메트를 비하한 작품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서구 사회는 하나의 예술작품 일 뿐이며 표현의 자유는 보장 되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문제는 표현의 자유가 문명의 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켈란젤로 역시 <신곡> 의 영향을 받아 시스티나 성당 벽에 <최후의 심판> 을 그렸다. 한창 벽화가 제작되고 있을 때였다. 수백 명이 나체로 묘사된 벽화를 보고 추기경 비아지오 다 체세나가 "목욕탕 같다"고 비난하자 화가 난 미켈란젤로는 그를 지옥에서 뱀에게 칭칭 휘감긴 마귀의 모습으로 그려 넣었다. 억울했던 추기경이 교황을 찾아가 벽화의 지옥에서 자신을 지워달라고 탄원하였을 때 교황은 "안타깝게도 내 힘은 지옥에 미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교황조차도 어쩌지 못했던 미켈란젤로의 위세는 예술가가 누리는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최후의> 신곡>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누린 진정한 자유는 추기경을 지옥에 가둔 것이 아니라 당시로서는 어려운 일이었던 유색인종 인권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 에서 그는 흑인들이 구원을 받고 천사에 이끌려 천당으로 올라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17세기부터 인권 사상이 대두되었던 것에 비추어 본다면 이 벽화가 완성된 1541년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논란에 휩싸일 위험을 무릅쓰고 만인의 평등사상을 표현했던 미켈란젤로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르네상스적 예술가였던 것이다. 물론, 이 벽화의 지옥에 마호메트는 없다. 최후의>
다문화 사회에 필요한 것은 타문화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정신이다. 외국인 체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 우리 사회도 문화의 조화로운 공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 에서 보여준 인본주의 정신과 예술가로서 구가했던 자유의 본질은 지금도 돌이켜 볼만하다. 최후의>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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