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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세종로를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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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세종로를 지나며

입력
2009.10.19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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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던 금요일 밤, 혜화동에서 택시를 탔다. 기사님은 무언가에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술에 취해 비틀대는 사람이나 차선을 잘못 타는 자동차에 대고 토를 달았다. 광화문 앞에서 세종로 쪽으로 좌회전을 했다. 인적이 끊긴 광화문광장은 어두컴컴했다. 조금 더 달리자 빗물과 가로등에 희끄무레 동상의 윤곽이 살아났다.

세종대왕상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굉장했다. 아니나다를까 택시 기사님의 눈에도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그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 사이 나는 왜 세종대왕은 늘 저렇게 앉아만 있는 걸까, 생각했다. 앉아서 얼마나 많은 걸 볼 수 있었을까. 성군이었던 만큼 세종대왕은 수없이 잠행했을 것이다. 게다가 광장의 세종대왕상은 너무 컸다. 경복궁과 북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던 취지조차도 무색해졌다.

우리의 시선은 이제 세종대왕상에서 끊기고 만다. 실물 크기로 우리들 사이에 서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이제 손에 쥔 건 손바닥만한 집 하나예요." 기사님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가 울분을 토했다. "그런데 이 여편네는 남편 애간장 타는 걸 일체 모른다 이거예요." 룸미러로 슬쩍슬쩍 비치는 기사님의 얼굴, 나이는 예순쯤 되어 보였다. 집에 오는 내내 그의 사정을 들었다. 택시비를 받으면서 그가 물었다. "어떡해야 됩니까?" "용서하세요." 내가 들어도 참 설득력 없는 목소리였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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