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독거노인들에게 점심을 제공해오던 '사랑의 복지회'가 둥지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구청이 하천공사를 이유로 철거처분을 내리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송을 냈지만 결국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복지회가 서울 신도림역 2번 출구 옆 하천부지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96년. 복지회는 서울 관악경찰서 소속 한 여경이 83년 퇴직하며 기부한 돈을 종자돈 삼아 서울 봉천동에서 무료급식을 해오던 중 노인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신도림으로 이사를 했다.
예상대로 복지회는 외로운 노인들의 쉼터로 자리 잡았고, 매일 정오가 되면 36㎡(11평) 남짓한 컨테이너 박스는 폐품을 줍는 노인들과 독거 노인들 50~60명으로 빼곡했다.
복지회를 운영하는 김인섭(65) 원장과 다른 간사들은 환갑을 넘긴 몸을 이끌고 시장에서 청국장과 두부를 판 돈으로 다른 노인들의 식사를 제공해 왔지만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노인들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런 복지회가 위기를 맞은 것은 2007년 11월. 하천부지를 관리하는 서울 구로구청이 "점용허가 기간이 만료된 지 한참 지났다"며 자리를 옮기라고 요구한 것이다. 복지회는 반신반의 했지만 이듬해 3월 철거를 요청하는 공문을 전달받았다.
6월말까지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법에 따라 대집행이 이뤄진다는 내용이었다. 김 원장은 옮길 자리를 물색해 봤지만 여덟 곳의 후보 지역 모두 무료급식소가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지고 환경이 나빠진다는 이유로 주민들에 의해 거절당했다.
김 원장은 마지막으로 법에 호소해 보겠다며 지난해 8월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어렵게 모은 돈으로 변호사까지 선임했지만, 법리에 따라 판단하는 법원 앞에 또다시 무기력해졌다. 1심은"장기간에 걸쳐 불법으로 부지를 사용했고, 재해방지대책의 일환으로 하수지 부근 공사가 불가피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변론은 단 한 번으로 끝이었다.
김원장은 즉각 항소했다. 변호사를 계속 선임할 여력이 없어 '나홀로 소송'을 진행했고, 복지회의 현실을 담은 참고자료를 제출하며 "구청이 다른 장소라도 제공해 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사정했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행정5부(부장 조용구)는 이들의 딱한 사정을 받아들여 구청에 "장소를 물색을 해보라"고 권고했지만 구청측은 이를 거절했다. 결국 재판부는 "외로운 노인들을 위해 힘쓰는 복지회가 너무나 안타깝지만 법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김 원장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19일 밝혔다.
김 원장은 "소송 중에도 장소를 알아봤지만 도무지 우리를 받아 주는 곳이 없다"며 "구청이 우리를 조금만 신경 써 준다면 앞으로도 노인들과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구청은 "이미 많은 시간을 기다려줬다"며 "구청은 무료급식소에 정부 양곡을 시중보다 싸게 제공해 줄 뿐, 장소까지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또 "구로구청 내에는 9개의 다른 무료급식소가 있어 복지회에서 식사하던 노인들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도록 충분히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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