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맘' 황명은(36)씨의 사연으로 인터넷 육아사이트가 시끄럽다. 광고회사 상무로 일하는 그가 지난달 중순 한 지하철 무가지에 '아침마다 이별하는 여자'라는 광고 형태의 편지를 게재한 것이 계기였다. 출근 길마다'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동요를 부르며 발길을 잡는 다섯살 아들을 떼어놓고 나와야 하는 워킹 맘의 아픈 심정을 절절히 담아낸 내용이다. 그는 이어 또 다른 무가지에 가정과 일터를 병행하느라고 '나쁜 며느리'' 나쁜 아내'' 나쁜 엄마'가 된 자신을 솔직하게 '나는 나쁜 여자입니다'라는 글을 실어 화제가 됐다.
▦ 이 제목은 일하는 엄마의 육아 고충을 다룬 MBC TV '뉴스 후'에 인용돼 더욱 유명해졌다. 폐렴에 걸린 아이 간호문제로 남편과 다툰 후 워킹 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바꿔 보려고 1,000여만원의 자비로 시작한 '거사 '가 나름 결실을 거둔 셈이다. 당초 익명으로 게재돼 그렇고 그런 '티저광고(호기심을 유발해 제품을 알리는 기법)'처럼 보였다. 그러나 언론 취재망에 잡힌 황씨가 굳이 이름과 얼굴을 숨기지 않겠다고 판단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원죄처럼 안고 사는 워킹 맘들이 웃음을 되찾게 하는 캠페인을 지속하겠다는 뜻에서다.
▦ 그런데 최근 보건복지가족부가 출산 장려를 위해 내놓은 6가지 표어는 황씨를 무척 당황스럽게 했을 것 같다. '가가호호 아이둘셋, 하하호호 희망한국''출산은 감동, 육아는 보람, 가족은 행복''낳은 기쁨, 커가는 보람, 젊어지는 대한민국''낳을수록 희망 가득, 자랄수록 행복 가득''두 자녀는 행복, 세 자녀는 희망' 등 온통 희망이고 행복이고 보람이다.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동생입니다'라는 글귀도 있다. 여성들이 출산을 꺼리는 것은 희망과 행복을 차버리는 것이고 심지어 가족에게 줄 선물을 아끼는 이기주의라는 얘기다.
▦ 진보신당이 황씨의 말을 대신 해줬다. "정부가 2004년부터 출산장려 정책을 펴왔지만 5년이 지나도록 나아지지 않는 이유를 외면했다. 일자리, 보육, 교육 문제가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실질적인 성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출산이 행복이고 국가경쟁력이라고 우기는 정부는 우습다."복지부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출산장려에 못지않게 보육지원에도 신경을 쓰고 있고 내년 예산에 상당부분 반영했다고. 그러나 직장과 가정에서 매일 생존 전투를 벌이는 워킹 맘 입장에서 보면 책상머리 행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황씨는 여건이 나은 편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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