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권 지음실천문학사 발행ㆍ160쪽ㆍ8,000원
도회적인 것, 세련된 것, 해체적인 것, 감각적인 것들에 대한 지향이 '전위'로 등치되는 21세기 한국 시단에서 박형권(48) 시인의 첫 시집 <우두커니> 는 투박하기 그지없다. 한동안 한국시에서 잊혀져 있던 민중적 상상력이 추동하는 그의 시들은, 투박하지만 생명력으로 펄떡인다. 우두커니>
경남 마산 덕동바다의 작은 섬 조개섬에서 4~5년 전부터 조개양식을 하고 있는 박씨의 생활체험은 그의 시의 수원지다. 반농반어로 생계를 이어가는 생활공간의 특성을 반영하듯 흙과 바다의 상상력이 함께 시집을 가로지른다. 인간과 자연의 공생은 시집의 핵심 모티프다.
시인에게 4월은 '거대한 우주의 말씀이 논물을 따라 흐르'('물꼬를 트는 사월')는 계절이며, 모내기철인 5월은 '아버지가 두 발을 동동 걷고 모판과 사랑을 나눌 때 오월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엎드려 경배하는'계절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귀한 것으로 여기는 그의 감수성은 얼마나 예민하고 풍성한가. 시인은 쓴다. '귀뚜라미는 나에게 가을밤을 읽어주는데 나는 귀뚜라미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다'('우물')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구성진 입담은 슬그머니 웃음을 유도한다. 수더분한 노총각과 짧은 옷을 입은 처자를 흘깃흘깃 바라보며 '홍합이란 본시 사내들 먹여 사고 치게 하는 음식이야 암은, 암은'이라고 추임새를 넣는 홍합양식장 아낙네들의 입담을 묘사한 시 '행진', 외벌이로 일하는 아내를 둔 도시빈민계급 남성들을 소재로 '일하는 아내를 다독거려주는 일이 가랑이 안의 살점을 크게 키워서 좌삼삼 우삼삼 혼신의 힘'을 쏟는 일밖에 없다고 풍자하는 '등줄쥐' 같은 시는 활기롭다.
박씨는 200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그는 "제 시가 저 같은 소시민들도 작게나마 사회에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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