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노을지는 바닷가도, 비오는 창가도 우주에는 없어요, 그런 별이 많은 줄 알았더니…'('후일담'에서)
애틋함, 가련함, 그리움 따위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다. 두번째 시집 <우주전쟁 중에 첫사랑> (민음사 발행)을 상재한 서동욱(40∙사진)씨. 서씨는 그런 고전적 감정들을 전통적 서정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생래적인 거부감을 표시한다. 그것은 미지근하다, 신파다! 이런 감정의 알갱이들을 더 뜨겁고 강렬하게 표현하는 방식은 없을까? 이 시집은 그 모색의 기록이다. 우주전쟁>
그 모색의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SF적 상상력이다. 외계인과의 우주전쟁에서 살아남은 애인(표제작), 냉장고 문을 연 뒤 우주선 메인 게이트를 찾았다고 감탄하는 아내('한밤중의 냉장고'), 공중전화 부스를 운전하며 우주로 떠난 애인('외계인 애인'), 우주선이 된 전기밥통('겨울밤, 전기밥통') 등이 시집 곳곳에서 출몰한다. 독자들에게 이런 방식은 생경스럽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생경스러움이야말로 서동욱 시의 고갱이다.
그는 SF적 상상력에 더해 개그에 가까운 언어유희를 중용하며 독자들에게 충격을 준다. 가령 이런 식이다. 연정을 품고 있지만 당최 미지근한 상대의 반응에 혼자 속을 태우며 길을 걷다 그(그녀)로부터 예상치 못한 한 통의 전화를 받았을 때의 희열과 슬픔을 이렇게 쓴다. '위성들이 쏘아대는 전파가/ 사도들의 대갈통을 뚫고 강림했던/ 비둘기 모양의 고압전류처럼/ 삶과 바람을/ 괴롭고/ 충만하게 한다'('생은 문자 저편에')
연애시를 쓰면서도 SF소설이나 홍콩 누아르 영화의 모티프를 빌려오는 등 하위문화적 요소를 동원하고 있는 서씨의 시집은 독자들을 편안한 감상의 길로 인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저런 비틀기의 형식을 통해 독자들은 슬픔과 서글픔과 사랑과 같은 고전적 감정들의 21세기적 해석이란 어떤 것일지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6월 한국일보에 '2009 천문의 해' 기획으로 연재된 '별, 시를 만나다'의 해설을 맡기도 했던 서씨는 "감정은 액면 그대로 내보이는 순간 그 진실성을 잃고 증발된다"며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우주서사와 희극적인 언어유희를 결합시켜 그 감정의 진실성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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