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 키프니스 지음ㆍ김 성 옮김/지식의날개 발행ㆍ280쪽ㆍ1만2,000원
"불륜을 경험해본 분들 일어서 보시겠어요?" 경어체 문장이 귓가에 바싹 다가와 속삭이듯 읽힌다. 짐짓 못 들은 척하려 해도, 어느새 저자의 논리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은 독자를 '오프라 윈프리 쇼' 같은 TV 프로그램_물론 책의 수준이 훨씬 높지만_의 방청객처럼 대하는데,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저자의 입장은 오프라_너무 쉽게 가족과 하느님의 사랑에 함몰되는_와 정반대다. 이 책은 "사랑, 그 새빨간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미디어학과 교수이자 진보적 문화비평가인 저자는 사랑을 "소외된 노동을 양산하는 이데올로기"로 정의한다. 그는 현대인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동을 하며, 오르가즘 달성을 위해 노동을 하는" 존재로 파악한다. 어떤 획일적 가치도 조롱거리로 전락한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유독 사랑을 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인생의 패배자로 여기는 것은 난센스가 아니냐는 것. 도발적이고 솔직하고 또 설득력 있다.
자연히 가정이라는 공동체도 절대적이지 않다. 마르크스의 '소외된 노동' 개념으로 사랑을 규정한 저자의 재기가 다시 한 번 반짝인다. 가정이란 "사랑하지 않을 자유, 사랑하기를 멈출 자유,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자유"를 엄격히 구속하는 "강제 수용소"다. 불륜은 "사랑이라는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에 대한 고립된 저항"으로 복권된다.
그러나 불륜, 또는 저항을 선동하는 데 이 책의 목적이 있지는 않다. 사랑이라는 전제권력의 모순과 억압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보자는 것이 저자의 의도일 터. 물론 이 책에 정답은 없다. 다만 그 '정답 없음'의 외연 속에, 사랑과 가정이라는 껍데기에 갇힌 우리의 일상도 있지 않을까.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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