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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복수노조 접근 신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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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복수노조 접근 신중해야

입력
2009.10.1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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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은 한국인의 불치병이다. 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금융 위기의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갔다. 다행히 1년 만에 주가와 환율은 위기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소비심리가 되살아나고 백화점 매출은 쑥쑥 늘어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갈 길이 멀다. 그간 불가피하게 풀어댄 과잉 유동성과 최근의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물가 앙등이 걱정된다. 환율이 더 내려가면 우리 경제의 생명줄인 수출에 빨간 불이 켜질 것이다. 고용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소비기반을 잠식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더블 딥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기준금리 인상이나 환율 방어가 아니다. 경제사회 구조와 법제도의 변화이다. 한번 만들거나 고치면 이해관계자의 기득권과 조직의 확장동력 때문에 다시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이 절실하다. 그간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하여 구조조정을 미루고 부실을 눈감아주면서 우리 경제는 곳곳에 시한폭탄을 껴안고 사는 꼴이다. 국내외적으로 또다시 충격이 닥쳐오면 옥석 가리기에 실패한 대가로 동반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노조 관련 법안도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특히 노조의 권력화가 심각한 우리 현실에서 복수노조의 허용은 특정 노조의 독점을 깬다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큰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노조 간의 생산적 경쟁보다는 선명성 경쟁에 따라 합리적 온건노조의 약화와 투쟁적 강성노조의 득세가 불을 보듯 뻔하다. 여러 노조의 요구조건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그러지 않아도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에서 기업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개별 기업 입장에서도 여러 노조를 대상으로 협상해야 하는 비용의 증가와 태업의 활성화로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기업의 은밀한 어용노조 설립과 지원

유혹으로 노사관계가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다. 노조 설립이 쉬워졌다는 인식에 따라 노동운동 단체들은 일부 기업을 목표물로 삼아 경쟁적으로 노조를 만들려 할 것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기업단위 노조와 산별 노조,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 다수 노조와 소수 노조 등의 노ㆍ노 갈등이 예측할 수 없이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협상 창구 단일화로 협상비용을 줄인다고는 하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사항이어서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다. 외국의 경우 미국 팬암 항공(5개 노조)이나 영국 브리티시 레일랜드(17개 노조) 등 초우량 기업들도 노ㆍ노 갈등과 잦은 파업으로 도산한 경험이 있다.

무엇보다 세계 일류 기업들이 치열하게 시장 선점과 연구기술개발(R&D) 선도를 다투는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파업과 태업의 증가는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게 된다. 그나마 생산부문 파업은 판매 지연에 따른 손실을 입히는 정도이지만 연구기술개발 부문의 파업은 기업과 국가의 중장기 성장동력에 손상을 준다.

복수노조 허용 및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금지 법안은 13년 전 김영삼 정부 말에 통과된 노동법의 유산이다. 당시 노동법 파동으로 촉발된 총파업과 정국 불안은 기아차 사태, 한보 철강 부도, 환율방어를 포함한 거시경제정책의 실패 등과 맞물리면서 외환위기라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초래했다.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 지연, 공기업 개혁후퇴, 노사관계 불안 가중이 가까스로 회생 조짐을 보이고 있는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김영세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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