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 지음/생각의나무 발행ㆍ280쪽ㆍ1만2,000원
"영웅이 그리스 신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그리스 신화가 그만큼 가부장적이라는 것을 뜻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영웅이 활약하는 곳이 주로 외국이라는 점은 그리스 신화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점이다."(218쪽)
그림보다 글자가 차지하는 면적이 넓은 책을 집어들기 시작할 무렵의 필독서가 그리스 신화다. 서양의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는 첫걸음 떼기라고, 유치원 선생님이나 어머니의 말씀이 곁들여진다. 이 말씀은 뒷날, 혹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를 원서로 읽는 인연에 닿더라도 감히 의심하기 힘든 권위로 남는다. 신통기>
비판적 독서가 아니라 맹목적 흡수의 대상인 이 그리스 신화를, 박홍규 영남대 법학과 교수가 헤집고 나섰다. 박 교수는 노동법을 전공한 법학자인 동시에 고흐, 베토벤의 평전을 쓰고 에드워드 사이드, 미셸 푸코 등의 저서를 번역한 광폭의 인문학자. 그는 제우스나 아프로디테 같은 그리스의 신들을 벽사(辟邪)의 대상으로 강등시키는데, 그래서 책 제목도 <그리스 귀신 죽이기> 다. 그리스>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의 정신 유산이라는 그리스 신화를 그렇게 파서 뒤집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의 비판의식은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그리스 신화에 씌워진 '인간적'이라는 인식에 대한 반론이다. 적대, 정복, 복수, 음모, 계략, 살인, 사기, 약취, 강간, 차별 등등 그리스 신화에는 반인륜적 폭력과 근친상간이 난무한다. 저자는 "삶을 경쟁과 폭력으로 만드는 신화는 유해하다. 그리스 신화에는 최소한의 권선징악조차 없다… 혹 그리스 신화에 대한 열광적 읽기가 원인이 되어 우리 사회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한다.
두번째는 그리스 신화에 내재한 억압 기제에 대한 문제제기인데, 이 책의 차별성은 이 부분에서 도드라진다. 저자는 신과 괴물의 대결이라는 그리스 신화의 뼈대에서 배제와 착취의 서구중심주의, 혹은 오리엔탈리즘의 원형을 찾는다. '신과 영웅들=지배자=남성'이라는 주체, 그리고 '인간들=피지배자=여성'이라는 객체를 가르는 이분법이 피지배계급에 대한 지배계급 폭력의 정당화로 이어진다는 시각이다.
이 책은 신, 영웅, 괴물의 삼층 차별구조에 따라 그리스 신화를 분석한다. 그렇게 해부된 그리스 신화는 위험하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지배적인 세계의 추세"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이제 그리스 신화는 추방돼야 한다. 그리스 귀신은 죽어 마땅하다. 경쟁과 폭력이 아닌 화합과 평화의 새로운 세계를 위해서, 더 이상 그리스 귀신을 숭배해서는 안 된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