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열린 한국은행 국정감사. 최근 논란을 반영하듯, 국감이슈는 온통 '출구전략'과 '더블딥'이었다.
하지만 그냥 묻혀 지나가기엔 너무도 중요한 테마 하나가 있었다. 오는 28일 산업은행에서 분리 출범하는 한국정책금융공사 얘기였다. 정책금융공사는 산은 민영화로 공백이 될 정책금융기능을 담당하기 위해 신설되는 기구. 중소기업 지원과 신성장동력산업 육성, 지역개발 등을 위한 금융지원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문제의 공사의 자금조달방식이다. 해당법률은 공사가 필요할 경우 한은에서 자금을 빌려올 수 있도록 했다. 한은에서 돈을 빌려온다는 것은 돈을 찍어내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 바로 이 점이 '한은의 발권력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란 비판을 사는 대목이다.
사실 급할 때 한은 발권력에 의지하려는 시도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멀게는 돈을 찍어 주가를 떠받쳤던 1989년의 12ㆍ12조치가 그랬고, 환란 직후 외환은행을 살리려고 수출입은행을 통해 한은이 우회 출자했던 것도 그런 케이스다.
그 때야 비상상황이니 그랬다고 치자. 때론 그렇게 긴급하지 않은 사안에도 한은이 동원된다. 2004년엔 주택금융공사를 세우는데 정부재정부족으로 자본금 확보가 어렵게 되자, 한은에게 2,000억원을 떠맡겼다. 따지고 보면 이번 정책금융공사도 그런 맥락. 하기야 금융감독원 경비조로 매년 한은이 돈을 찍어 주고 있으니, 더 말을 해 뭐하랴.
한은도 국가기관인데, 나라경제의 중요사안에 그 돈을 쓰는 게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부 돈(재정)이 써야 할 곳과 한은 돈(발권력)을 써야 할 곳은 엄연히 다르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독립적 중앙은행을 둘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한은은 맘대로 돈을 찍어내는 공장이 아니다. 그 돈이 결코 공짜 돈도 아니다.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지불해야 하는 '값비싼 돈'이다. 정부도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하는 모양새는 영락없이 중앙은행 발권력을 '정부 쌈짓돈'처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최진주 경제부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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