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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이고·갈아내고… "미술은 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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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이고·갈아내고… "미술은 노동이다"

입력
2009.10.1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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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고산금씨는 신문이나 소설의 한 페이지를 미술 작품으로 옮긴다. 한때 시력에 이상이 생기면서 정보와 글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된 후 시작한 작업이다.

띄어쓰기나 글의 배열 등 본래의 편집 방식은 그대로 따르되, 문자 대신 지름 4㎜의 인조진주를 핀셋으로 나무판 위에 하나하나 붙여 활자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조형미로 표현해낸다. 신문 한 페이지를 완성하려면 하루 16시간씩 한 달을 꼬박 작업해야 한다. 고씨는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라 고되긴 하지만, 육체와 마음을 다해 만들어가는 아날로그적인 요소가 주는 매력이 크다"고 말했다.

요즘 화랑가에서는 이처럼 오랜 인내와 무수한 반복 작업을 통해 이뤄진 노동집약적 작품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이런 작품들이 놀라움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모든 게 쉽고 간편하고 빠른 디지털 시대에 예술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 삼성동 인터알리아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연금의 수(手)'전(11월 3일까지)은 고씨의 작품을 비롯해 중견 작가 7명의 작품 50여점을 걸었다. 진주와 크리스털, 종이, 못 등 다양한 소재는 수공예적 노동의 과정을 거치면서 연금술을 부린 듯, 새로운 이미지로 나타난다.

황인기씨는 산수화나 세잔의 정물화 등을 사진으로 찍어 픽셀로 전환시킨 뒤 픽셀 하나하나마다 레고 블록을 붙였다. 캔버스에 작은 구멍을 뚫고 크리스털을 일일이 박아 넣은 풍경화도 있다. 유봉상씨는 못을 사용한다. 원하는 이미지에 맞게 가느다란 못들을 나무판에 박은 후 화면을 도색하고, 사포질로 못 끝부분을 갈아내 최종적 형태를 드러내는 그의 작업은 지극히 섬세하고 예민하다. 특히 숯가루를 뿌린 검은 화면 위에 못으로 반짝이는 밤바다를 표현한 작품은 관람객들을 고요한 사색으로 이끈다.

이승오씨는 책을 가늘게 자른 뒤 그 결이 드러나도록 캔버스 위에 콜라주해 마릴린 먼로, 앤디 워홀 등의 얼굴을 만들었다. 멀리서 보면 거칠게 그린 유화처럼 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화석의 단층처럼 여러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지현씨는 책 속 시간의 노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섬세한 끌을 사용해 책 자체를 무수히 뜯어냈다.

인사동 갤러리 아트싸이드에서 개인전 '위장'(26일까지)을 열고 있는 윤종석씨는 링거 바늘을 꽂은 5cc 주사기로 캔버스 위에 물감 방울을 떨어뜨려 옷의 이미지를 만든다. 화면 위로 뾰족하게 솟아있는 엄청난 수의 주사 바늘 자국들은 놀라움 그 자체다. '가슴에 별을 달다' 시리즈는 브라질 등 월드컵 우승국들의 유니폼을 총 모양으로 형상화했고, '라이벌'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C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개 모양으로 변형시켜 서로 으르렁대도록 했다.

소격동 선컨템포러리는 향불이나 인두로 태워 무수히 구멍을 낸 한지를 이용하는 이길우씨의 작업을 '무희자연'(27일까지)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종이를 여러 장 겹침으로써 겸재 정선의 산수화와 마이클 잭슨이 춤추는 모습이 한 화면 속에 나타난다.

삼청동 아트파크에서 31일까지 개인전을 여는 조각가 김용진씨는 작은 금속선을 캔버스나 나무판에 촘촘히 꽂아 만든 도자기와 그릇의 형상을 보여준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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