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12일 쓰촨성 대지진이 일어난 지 채 두 시간도 안되어 현장으로 달려간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도착하자마자 공무원과 군인들을 향해 "인민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라, 지금 인민들이 죽어가고 있다, 일초가 급하다, 인민들을 구하라"고 소리쳤다. 이 말 한마디에 중국인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민ㆍ관ㆍ군이 하나가 되어 구조작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원 총리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여진의 위험 속에서 2박3일간 피해지역을 누비면서 고통 받는 백성과 함께 했다. 특히 무너진 집에서 부모를 잃고 혼자 우는 여자아이를 붙들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一線希望 百倍努力(1%의 희망만 있더라도 우리는 100%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위로했다. 또 권위를 내세우며 현장의 공무원들만 닥달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장대 같은 빗줄기를 맞으면서도 핸드마이크를 들고 건물에 깔린 사람들에게 다가가 "총리가 왔다. 조금만 참아라, 반드시 구해내겠다"며 구조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이처럼 공직자들이 민생 현장을 중시하는 것은 중국의 오랜 전통이다. 굳이 연말연시나 특별히 이름 붙은 날이 아니더라도 중국 지도자들은 현장 방문을 중요하게 여긴다. 실례로 중국 개혁ㆍ개방의 아버지로 불리는 덩샤오핑(鄧小平)은 88년 춘절 때 상하이를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춘절마다 7년 연속 남부 연해지역 시찰에 나서 개혁과 개방을 직접 독려했다. 92년 덩이 내놓은 제2의 개방개혁선언, 곧 남순강화(南巡講話) 역시 춘절 기간의 현장시찰에서 얻은 결론을 집대성한 것이다.
전 랴오닝성 성장인 보시라이(薄熙來)는 성장 시절 현장감각을 중시한 또 다른 인물이다. 그는 랴오닝성에 해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전세계를 돌아 혁혁한 유치실적을 올리고 경제발전의 발판을 마련한 공로를 인정 받아 중국 상무부장관으로 승진되기도 했다.
중국 지도자들이 이렇게 현장을 중시하는 이유는 가만히 앉아서는 문제점을 찾아내기도 어렵고 해결책을 찾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도자의 필수조건으로 '현장 경험'과 '현장 지도능력'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최근 들어서는 공무원제도에 경쟁시스템을 도입하고 연공서열보다 현장 성과를 우대하는 인사고과 기준을 마련했다.
이처럼 중국 공직자들은 현장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 일궤십기(一饋十起), 곧 "진정한 관리라면 밥 한 그릇을 다 먹기 전에라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백성이 찾아오면 자리를 열 번 박차고 일어난다"는 하(夏)나라 우(禹)임금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려움에 고통 받고 신음하는 백성과 함께 호흡하려는 자세이다. 해법을 찾든 못 찾든 그것은 두 번째 문제이다. 우선 백성과 고통을 한자리에서 함께 나누려고 할 때, 실제로 그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무언의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공직자들이 평상시에도 수시로 민생 현장을 방문해서 백성을 섬기는 자세, 아래를 향한 '하심(下心)의 리더십'을 백성에게 직접 보여주고, 일반 백성들은 이런 공직자들의 솔선수범을 보면서 자발적인 존경과 신뢰, 성원을 보내는 것은 아닐까?
노웅래 전 국회의원·중국 무한대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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