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는 2일, 7일 오일장이 서는 선산 장날입니다.
조금씩 무료하거나 지칠 때는 시골 장터를 찾아나서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제는 선산장 구경을 하기로 하고 아침 일찍 장터로 달렸습니다. 입구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장터로 들어섰습니다. 장터 입구 오른쪽에는 깔끔한 대형마트가 오픈해서 직원들은 친절했고, 보기만해도 싱싱한 야채들이 위생적으로 포장돼 고객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울에 달아서 원 단위까지 인쇄되어 나오는 가격표 보다는 손짐작으로 대충 들어주는 장터 사람들의 흙 묻은 손이 정감이 가고, 밭에서 갓 뽑아온 야채의 싱싱한 생명이 있는 장터가 좋아 여전히 장터를 찾게 됩니다.
선산장터엔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사람들이 모여서 서너 명씩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시끌벅쩍 했습니다. 고소한 고등어가 자글자글 기름을 내며 익어가고, 멸치 육수가 먹음직한 가락국수가 팔려 나가고 있었습니다. 장꾼들의 이른 아침을 해결하는 곳이지요. 어제 밤에 한잔하셨는지 한 아저씨는 콩나물해장국 앞에 소주까지 놓고, 해장술 한 잔 할 모양입니다.
고등어 익어가는 냄새가 나를 자꾸 잡아당겼지만 나올 때 먹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방금 나무에서 따온 듯한 사과를 한 차 실은 소형 화물차가 있고, 아주머니는 비닐봉지에 사과를 담느라 바쁜 손을 움직입니다. 손으로는 사과를 넣고 눈으로는 손님을 보면서 "사과 사 가이소. 달고 맛있는 꿀사과 사 가이소. 한 봉다리에 5,000원입니다. 사과 사 가이소" 외칩니다.
조금 올라가니 리어카에 고등어를 가득 실은 아저씨가 외칩니다. "고등어 사이소. 방금 바다에서 잡은 기라요. 팔딱팔딱한 고등어 사 가이소. 굽어 먹어도 맛있고 지져 먹으면 더 맛있는 고등어 퍼뜩 사 가이소. 단돈 천원에 두 마리"
고등어를 산 우리 아내는 덤으로 얻은 한 마리에 행복해 합니다.
그 옆에는 도시락 반찬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건어물전인데 마른멸치 쥐포 오징어 눌린 것, 그리고 명절이니 만큼 제수용 건어물들이 진열돼 있습니다. 낙지 문어 명태 가오리가 세트로 포장돼 있고, 아주머니들이 가격만 자꾸 묻고 그냥 지나가는 것을 보니 흥정이 쉬이 안 되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주인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지매요. 다 둘러 보고 오이소. 우리 끼 물건 좋고 때깔 나고 쌉니다. 댕기 오이소" 합니다.
여긴 야채전입니다. 흙이 묻어 있는 튼실하고 늘씬한 우엉과 뿌리가 살아있는 대파가 있고, 타박타박한 맛이 날 고구마가 꽃분홍 살빛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 캤을 듯한 땅콩이 있고 토실토실한 알밤도 있습니다. 이른 봄부터 결실을 보기까지 땀 흘리며 일했을 농부의 고된 흔적이 묻어 있습니다. 생명을 느끼게 하는 곳입니다.
우엉 한단 사고 땅콩 한 되박 사고 햇밤도 좀 샀습니다. 모자만 가득 진열된 모자 집에는 별의별 모자가 다 있고, 좀 더 올라가니 발만 있는 마네킹이 예쁜 양말을 신고 거꾸로 서 있습니다. 500원짜리 발목양말을 열 켤레 샀더니 스타킹 하나를 끼워 줍니다.
도넛 냄새가 살살 나서 찾아가니 동그란 도넛이 기름에 동동 떠서 몽실몽실 퍼져갑니다. 찹쌀 도넛 두 개, 방금 튀긴 도넛을 두 개씩 먹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빵집에서 먹던 도넛 맛이 났습니다. 도넛 5,000원어치는 포장을 하고.
이제는 즉석 어묵집. 야채 어묵들이 초록 오랜지색으로 올망졸망 제 나름대로 질서를 잡고 누워 있는 모습이 다채롭습니다. 대추만한 어묵을 시식하고. "아지매요, 마이 파이소. 수고 하이소"하고 인사하며 지나가려니 "하나 더 묵고 가이소"하십니다. 아지매의 얼굴에는 건강한 웃음이 넘칩니다.
여기는 오만 가지 물건이 있는 잡화상입니다. 가위 고무줄 드라이버 등등. 시골 가져갈 톱 하나를 샀습니다. 호미도 있고 낫도 있고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잡화상입니다.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가 모자집에 들러서 밀짚모자를 두 개 샀습니다. 가을 추수를 하려면 아무래도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아내 것은 패션 밀집모자라고 좀 세련된 것을 사고 둘이서 밀짚모자를 쓰고 장터를 돌았습니다. 장터 맨 끝에는 강아지 닭 고양이가 서로들 목청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제 눈을 겨우 뜬 것 같은 주먹만한 강아지가 꼬물대며 형인지 동생인지 포개져서 서로들 꼬리를 물고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고, 좀 더 큰 강아지는 팔려갈 팔자도 모르고 두 마리가 짓궂은 장난을 치며 깽깽대고 있습니다. 고양이 새끼도 있고 벼슬이 붉은 장닭, 오동통한 토종닭, 영양가 높다는 새까만 오골계도 있어서 마치 작은 동물농장을 장터로 옮겨온 것 같았습니다.
지나가던 어린아이와 할머니가 강아지를 사려는지 주인과 흥정을 하고 있습니다. 손주는 아예 강아지를 안고 놓지를 않고 할머니에게 칭얼대더니 결국 까만 강아지의 주인이 되고 마네요.
알록달록 꽃들이 줄을 선 꽃가게 옆에는 옹기전이 있고, 까만 옹기는 가을 햇살을 받아서 반들반들 윤이 나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리.
"골라 골라, 맨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있을 때 쌀 때 퍼뜩 가져 가이소. 아 그거 남는 거 없어요. 1,000원만 더 쓰시지. 떨이요 떨이. 막걸리 한 사발 사 먹게 떨이 해 가이소."
젊은 새댁들은 애교 섞인 흥정을 잘도 합니다.
"아저씨 요고 하나만 낑가 주이소. 아저씨 너무 인심 좋게 보여요."
털털한 아저씨는 기분 좋아서 "남는 것도 없는데, 예 가져 가시고 또 오이소" 한다.
장사 본전도 안되고 밑지고 판다는 거짓말,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거짓말, 노인들 빨리 죽고 싶다는 우리나라 3대 거짓말을 시골 장터에서는 수시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한 바퀴 돌고 나니 출출해서 아침에 봐뒀던 밥집으로 가서 콩나물해장국 한 그릇씩하고 역시 덤으로 노릇노릇 구운 고등어까지 맛나게 먹습니다.
시원한 막걸리 한 잔씩 아내랑 건배하고 나니 축 늘어졌던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시골장터에서 살아갈 힘을 얻어 갑니다. 행복한 시골장터로 가을맞이 나가 보세요. 잘 익은 김장용 고추도 살 겸 해서 한 바퀴 둘러보세요. 행복을 덤으로 드립니다.
경북 구미시 형곡동 김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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