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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萬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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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萬德

입력
2009.10.1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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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바쁜 아침, 큰애가 학교에서 가져왔다는 비닐 봉투에 쌀을 퍼담느라 더욱 부산스러웠다. 봉투가 제법 커서 허리를 굽히고 한참이나 쌀을 퍼담았다. 평소 조금씩 쌀을 사다가 잡곡과 섞어두는데 잡곡도 괜찮을까, 걱정이다. 행사의 이름은 '김만덕 나눔쌀 모으기'이다.

김만덕은 조선 후기 제주의 관기로 후일 양인이 된 뒤 객주로 벌어들인 돈을 굶주리는 이들을 위해 썼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웬 쌀 모금인가 의아했는데 아마도 그런 상징을 담고 있었던가보다. 우리 어릴 적에도 곧잘 쌀 모금을 했다. 쌀이 귀하던 때였기 때문에 양이라고 해야 기껏 편지 봉투로 하나. 그 적은 양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학교에 와서 하나, 둘 부으면 어느새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렇게 모은 쌀은 학교 내 불우 학생들에게 전달되곤 했다.

김만덕 나눔쌀 모으기의 목표는 2만 섬이라고 한다. 이 쌀들이 무상급식 예산 삭감으로 어쩌면 굶게 될지도 모를 아이들에게 돌아갔으면 좋겠다. 무상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해놓고도 관계자들은 요즘 밥 굶는 집이 있느냐며 태평한 소리를 했다고 한다. "아이구, 무겁구나." 커다란 쌀 봉투를 짊어진 큰애가 너스레를 떤다. 나랏님도 구하지 못한 가난을 구제하기 위해 만덕은 애를 썼다. 다만 필요한 이들에게 쌀이 돌아가는 동안 쌀이 부패할까 걱정이다. 쌀도 신선 식품이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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