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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다시 노벨상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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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다시 노벨상을 생각한다

입력
2009.10.1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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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되었다. 과학자로서 연구하는 분야나 아는 사람, 연고 있는 대학이나 연구소가 수상자로 선정되면 들뜨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늘 '왜 우리는 못 받느냐'고 야단이다. 노벨상 수상자도 스포츠 선수처럼 키울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듯해 유감이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진핵생물 염색체의 말단 텔로미어의 구조와 텔로미어 복제효소를 발견한 세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화학상은 RNA에서 단백질을 합성하는 데 필수적인 리보솜의 구조를 밝힌 세 명이 수상하게 됐다. 짧게 설명하기 힘든 두 연구 모두 생노병사에 대한 근본적 답이다. 연구성과가 발표된 지 20년이 넘는다. 그 동안 많은 과학자들이 성과를 확인하고 발전시켰고 질병을 이해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는 것이 확실해 지면서 노벨상 수상은 몇 년 전부터 예견되었다.

돈과 사람이 미국에 몰리면서 노벨상을 타는 횟수가 증가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미국에 무조건적 존경을 표하는 것에 비하면 영국과 유럽 쪽의 수상자가 훨씬 많은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럴까. 연구비 시스템, 연구 문화의 차이가 중요한 원인이다.

미국에서는 연구 성과가 미리 담보되지 않으면 연구비를 받기 힘들다. 정해진 기간에 얼마나 좋은 논문이 나올지 동료들이 평가하고, 경쟁을 이겨야 한다. 모험적이거나, 응용성이 없는 연구는 지원을 받기 힘들다. 이에 비해 이번에 29번째 노벨상을 받아 단위 연구소로는 단연 앞선 영국 캠브리지 의학연구소, MRC-LMB (MRC Lab. of Molecular Biology)는 근본적이고 어려운 연구를 지원한다. 얼마나 기초적이고 훌륭한 연구를 수행하느냐를 묻는다.

물론 이 곳의 연구 책임자가 되고 정년을 보장 받는 길은 매우 까다롭지만, 한 번 들어가면 연구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철새처럼 연구비를 좇아 연구 방향을 바꾸지 않아도 되니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오랜 세월 한 우물을 팔 수 있다. 올해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블랙번도 LMB에서 노벨상 수상자 생어에게서 수학했다. 이 연구소를 설립한 페루츠는 "과학에서는 진리가 항상 이긴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과학자들에게 가장 좋은 스템을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좋은 연구자들이 서로 활발하게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고 돈 걱정 없이 연구에 매진하도록 지원하였다.

또 연구비가 연구소 전체에 지원되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필요한 이상으로 많이 연구비를 확보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모든 장비와 시약은 공유하고, 협동 연구자는 옆에서 바로 구할 수 있다. 연구의 시너지 효과가 있고 전체적으로 연구비 낭비도 적다. 돈 걱정 없이 최고의 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은 자연스레 인재들을 불러 모아 지속적 성공의 바탕이 됐다. 유럽과 일본 등의 많은 연구소가 이를 모델로 삼고 있다.

노벨상 홈페이지에는 수상자들의 감동적인 스토리가 올라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수십 년간 포기하지 않고 한 질문에 매달렸다고 한다. 유행 따라, 연구비를 따라 다녀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힘들다. 우리가 지금 가장 깊은 지식의 물을 끌어내는 우물을 팔 때인지, 성과가 보장되는 연구를 지원하여 일단 체면을 차릴 때인지, 저마다 생각과 판단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들이 한결같이 들려주는 소감이 있다. "나의 연구를 믿고 오랜 세월 지원해 준 ○○에게 감사한다"

이현숙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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